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정도?
최근 박사과정실이 강제로 이전당하는 일이 있었다. 전공 사무실과 행정실 사이의 알 수 없는 알력 다툼 때문이었다(사실 더 자세한 사정이 있지만 생략하기로 하고..). 선배들한테 들으니 6년 사이에 벌써 세 번째 이사라고 한다. 정해진 자리 없이 일단 비면 이동하고, 그러다 그 장소를 써야 하면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이런 식이다. 오랫동안 엉덩이 붙이고 눌러앉아있어야 할 박사과정생들이, 학교에서는 유랑민 신세다.
학교에서 대학원생의 위치는 참 애매하다. 우리는 '학생'일까, '직원'일까? 학내 구성원이라는 명분 아래 대학원생은 학생과 직원 사이를 떠돈다. 등록금을 내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학교 안의 수많은 일들을 자처하기도 한다. 조교로, 행정 보조로, 가끔은 '이름 없는 인력'으로 계속해서 호출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대학원생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노예라고 조롱받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왜 유독 대학원생만 애매하고 모호한 존재인 걸까?
생각해 보면, 학부생은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는 주된 '고객'이다. 교수님도 학교도, 학부생 앞에서는 어쨌든 '서비스 제공자'가 된다. 대학은 학부생을 잘 대우함으로써 만족도, 취업률, 학생 유지율 등을 평가받아야 하니까 학부생을 잘 대우해야 할 실익이 있다. 그런데 대학원생은? 등록금을 내기는커녕 돈(장학금)을 받고 들어온다. 그 대가로 교수님 수업 조교를 하고, 학교 행사 준비도 돕고, 학부생을 직접 대면하고 상담을 해주거나 다른 대학원 후배들을 교수님 대신 지도하며 여러 연구비 신청서까지 대신 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라기보다는 쉽게 쓸 수 있는 존재, '노동력'으로 취급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생은 교수님과 행정실 사이에 절묘하게 껴 있는 듯하다. 학부생은 주로 '교수와 학생'의 관계로만 엮여있지만, 대학원생은 '교수와 학생'이자, '교수와 연구자', '교수와 조교' 등 복합적인 관계로 엮여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위치에서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 여러 책임만 요구받는다. 학생으로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연구자로서 연구도 열심히 열심히 해야 하며, 조교로서 일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수업과 연구 행정 그 모든 일에 껴있다 보니 교수님과 행정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그건 저쪽 일이에요'하고 미루는 사이, 중간에서 모든 일을 문제없게 만들어야 하는 건 우리 몫이 돼버린다.
또 학교를 돌아보면, 확실히 대학 시스템은 '학부 중심'으로 설계가 되어있다. 동아리실 배정, 강의실 구성, 복지, 상담 서비스, 예산 배정 등.. 대학의 전반적인 행정, 공간 운영, 정책 등 대체로 학부생 중심으로 설계가 되어 있다. 한편 대학원생의 경우 커리큘럼도 소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학부생만큼 과 외 활동도 많지 않을뿐더러 과목 선택도 좁고 복지 혜택도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학교 시스템에서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대학원생은 '혼자서 알아서 할 줄 아는/알아야 하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다. 학부생들은 미성년을 갓 벗어난 어린 친구들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그들에게 '성인'으로서 기대하기보다는 아직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하고 지도받아야 할 존재들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한편 대학원생은 이미 성인이니까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암묵적 기대가 있어 보인다. 학부를 졸업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도움도, 배려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중간 지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학원생이 없으면 이 학교는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수업 운영, 행정 실무, 연구실 관리, 학회 준비, 연구비 정산까지. 묵묵히 돌아가는 학교의 많은 톱니바퀴 속엔, 실은 이름도 얼굴도 모를 수많은 대학원생들의 노동이 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다. 친구들은 가끔 농담처럼 말한다. “넌 그냥 노예잖아.” 그 말이 억울한 건, 농담인데도 진짜 같아서다. 나도 언젠가 교수가 되고 싶다. 그런데 가끔 무서워진다. 이렇게 자신도 보호받지 못한 채 버텨온 사람들이, 훗날 더 가혹한 방식으로 후배를 부리게 되는 건 아닐까. 마치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복수하듯, 또 다른 누군가에게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는 편리하다고 그저 부리기보다는 이 불균형과 악순환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2025.05.28. 씀
2025.06.12. 마무리함
2025.06.25. 발행함
이 글을 쓴 지는 오래되었으나 이 글이 혹여나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만들까 싶어 한 달을 두고 고민했다. 하지만 나에게 글쓰기는 힐링이나 치유라기보다는, 글쓰기로 잠시 위안을 받고 산뜻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목적보다는, 내 삶과 일상에 대해 물음을 던지면서 조금씩 불편해지기 위함이다(나태한 인문사회학도만큼 충실하지 못한 삶이 어디 있으랴). 이건 또 다른 나를 알아가는 기회일 테다. 읽는 누군가 역시 내 글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면 감사한 일이겠지만은, 나로 하여금 모르는 또는 모르고 싶었던 세상에 대한 조금의 불편함에 대해서도 인지할 수 있는 기회였으면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저, p.31) 일부 변형하여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