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만 가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녹음이 푸르른 계절,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결혼식이 많은 요즘이다. 매주 하나씩은 꼭 열어봐야 하는 청첩장들에 나도 남편도 덕분에 주말마다 차려입고 열심히 서울 곳곳을 다닌다. 다만 내가 요즘 신경 쓰이는 건 바로 명품백, 다른 하객들의 어깨에 어떤 브랜드가 걸려있느냐다.
결혼식엔 명품백을 메고 와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 합의라도 있는 걸까? 샤넬, 디올, 루이뷔통, 구찌... 결혼식에 가면 거의 뭐 준 백화점 명품관 수준이다. 요즘은 명품 신발도 종종 보인다. 반면 내 옷차림은 항상 대체로 비슷하다. 5년 전 직장 다닐 때, 그러니까 사회 초년생일 때 샀던 적당히 비싸고 적당히 저렴한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들. 다들 성숙한 직장인으로 레벨업을 하면서 그만큼 가방도, 신발도 좋아지는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사회 초년생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는 자격지심도 조금 든다.
왜 나는 결혼식에 와서 자꾸 다른 사람의 가방만 쳐다보고 있는 걸까? 사실 나도 결혼할 때 좀 고민했다.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결혼식이나 다른 격식 있는 자리에 들고 다닐 명품백 하나쯤은 마련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대학원생의 결혼은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신혼집 마련도 빠듯하고, 예식 준비도 최소한으로 하게 된다. 뭔가를 '사치'라고 느끼는 순간 그건 내 리스트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된다. 아무리 내가 직장 생활을 통해 모아놓은 돈이 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들어올 고정적인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돈 나갈 일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명품백도 그랬다. 어차피 학교 다닐 때 들고 다닐 일도 없고, 연구실에 앉아서 논문을 쓰는 데에 명품이 필요하진 않으니까. '언젠간 하나쯤 생기겠지' 하고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막상 식장에 들어설 때, 내가 유난히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남들의 어깨에 걸쳐있는 큼지막한 로고를 보면서 괜시리 내 가방을 숨기게 되기도 하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가방에 눈이 갔다. 안보려고 해도 내 눈엔 어쩜 그런 것만 들어오는지. 저 가방은 500만원, 저 가방은 300만원, 오, 저 가방은 1000만원짜리네..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가격을 떠올리게 된다.
명품백이 부러운 건, 단지 그 브랜드 로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가방을 들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 직장생활을 통해 차곡차곡 쌓인 경력, 때로는 부모님의 지원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결과 같아서다. 그건 '지금까지 잘 살아왔습니다;라는 어떤 사회적 증명처럼 보인다. 명품백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일종의 '상징'이나, '트로피'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지금껏 잘 살아왔나? 이만하면 괜찮나? 그 작은 가방 하나가 묻는 질문은 너무나도 많다.
직장을 그만둔 것도,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내 선택인데,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명품백 사이에 앉아있는 내 가방이 유난히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비단 가방 하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결혼식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무대에 서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비교하게 되는데, 나는 그 무대에서 빛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지나가는 엑스트라, 혹은 잘못된 선택을 한 친구 1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나는 끝없이 자조적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괜히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을 잘 꾸려가고 있는 거잖아. 누군가는 비싼 가방을 들고다니는 동안, 나는 긴 학위과정을 들고 다니는 중이니까 하고. 비록 내 손에 들린 건 명품 가방이 아니라 노트북과 프린트가 잔뜩 담긴 에코백 뿐이지만, 신부 마사지와 명품백 대신 결혼식 전날까지 학부생들 시험지를 채점하고 성적처리를 했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동시에 내가 지켜온 선택들이 쓸모없는 건 아니라고, 언젠간 이 시간도 다 또 다른 보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다독여본다. 나도 내 돈으로 하나쯤 좋은 가방을 살 날이 오겠지 하고 말이다.
2025.06.10. 씀
2025.06.12. 마무리함
2025.06.18. 발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