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취미생활
6월이다. 모든 대학생들이 지치면서도 마음이 살포시 뜨는 이 계절. 지금 이 고난만 끝나면 2달간의 달콤한 여름방학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설렘 속에 대학원생 역시 예외는 아니다. 캠퍼스 곳곳에서 기말고사 준비에 피곤에 절었다가 또 종강해서 하나둘씩 사라지는 학부생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또 괜스레 그들과 함께한다. 나도 종강을 맞아 놀러도 가고 싶은데, 뭐 대학원생이 시험이 어디 있고, 방학이 어딨겠냐만은...
대학원생도 방학에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대학원생도 학생이겠거니 하면서 방학땐 쉰다고 생각하고 좀 여유 있지 않냐고 물어본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학기 중에 열심히 달렸으니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어차피 수업도 없는데! 하는 마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대학원생이 하는 조교 일이라는 게, 단순히 학부 수업 조교만은 아니어서, 방학 때도 진행되는 수많은 수업(외부 기업 위탁 강의 및 기타 특수 대학원 강의 등)의 조교일은 여전히 남아있다(학부생의 등록금만이 학교의 주된 수입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리고 방학 때 더 바쁜 것이 일류 대학원생이라고(...), 학기 중에는 수업 듣느라 못했던 내 연구를 방학이 되고서야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진행한 내 연구가 내 실적이 되고, 내 졸업 논문이 되고 그런.. 그런 시스템이다 보니 방학 때 하는 일들이야 말로 진짜 연구자로서 나를 만들어주는 일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때를 열심히 보내지 않으면 결국 내 졸업과 임용을 위한 실적들은 계속 밀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학기 중에도, 방학 중에도 계속해서 공부와 연구를 반복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 일수다. 공부만 하려고 대학원에 왔는데, 막상 살아보니 공부만 하고는 못살겠다. 아침에 눈 뜨면 논문 생각, 커피 마시면서 데이터 모을 걱정, 밤에는 받은 피드백을 복기하며 잠드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피곤함이 쌓여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점점 무덤덤해진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손은 잘 안 움직이고, 그냥 앉아만 있게 된다.
원래 그렇다. 공부만 하려고 대학원에 왔다고 하지만, 공부만 하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적절한 딴짓은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고 누가(?) 그랬다. 누군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맞는 말이다.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오히려 중요한 걸 놓치게 되니까. 공부와 연구는 내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말이다. 생각을 환기시켜 줄 작은 탈선이 필요하다. 어차피 대학원생은 퇴근이 없는 직업(?)이니까, 의도적으로라도 나만의 퇴근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돌아왔을 때, 이전보다 조금 더 상쾌한 뇌와 눈으로 논문을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식물을 키운다. 물만 주면 조용히 자기 몫을 살아내는 식물들을 보면 마음이 조금 정돈된다. 특히 요즘같이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계절, 눈을 떠 베란다로 나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새 잎들을 찾을 때마다, 나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거겠지 하고 위로를 받는다. 한편으론 내가 쓰레기만(...) 만들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위안도 되고 말이다. 나처럼 식물에 관심 있는 연구실 선배와 농담으로 '논문 하나 리젝될 때마다 화분 하나씩 들이는 거 아니야?' 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사다 보니 돌봐줘야 할 식(植)구가 하나둘씩 늘고 있다.
또 요리도 종종 한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내 하루가 한 거 없이 흘러갔다고 느껴질 때면 더욱더 불타오른다. 뭔가 열심히 왔다 갔다 하긴 했는데, 정작 손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을 때. 그럴 때 나는 기어코 멋진 저녁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요리를 만들지 생각하고, 재료를 고르고, 순서를 따라 하나하나 완성해 내는 이 과정은 생각보다 꽤 치유가 된다. 예쁘게 담아낸 요리를 보면 뭔가를 스스로 완성했다는 성취감도 들고 말이다. 논문은 언제 끝날지 몰라도 오늘 저녁은 확실히 완성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남편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그날 하루는 비로소 뿌듯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가끔은 감히 공부 말고 다른 것도 한다. 아니해야 한다. 식물을 키우고, 요리를 하고, 볕을 잘 받아 반질거리는 잎을 쓰다듬고, 새로 산 조미료에 설렌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신기하게도 다시 공부할 기운이 난다. 어쩌면 이게 바로 대학원생의 생존법일지도 모르겠다. 공부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이 긴 시간을, 잠깐의 딴짓들로 버텨내는 일. 하라는 공부는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분갈이할 화분이나 구경해야겠다.
2025.06.04. 시작함.
2025.06.09. 마무리함.
2025.06.11. 발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