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구분하기

하지만 사실, 할 수 있는 건 존버밖에 없다.

by 군군댄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면서, 지금 최선을 다하기.


라고 많이들 말하고, 나 역시 이에 대해 끊임없이 곱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해봤자, 의미가 있나? 정말 좋은 결과로 돌아올까? 이게 다 헛된 삽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렸을 땐 무조건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믿을 수 있는 희망도, 의지도, 그리고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체력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다소 영악해진 나는 일단 내 몸 하나 편하게 뉘이기 바쁘다.




특히 대학원생의 삶은, 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논문을 하나 투고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다. 논문 디자인이야, 그래 내가 열심히 선행연구를 공부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어떻게 어떻게 만들어 낸다고 치자. 그다음 스텝인 맞는 데이터를 구하는 것도 그 당시 좋은 인연과, 좋은 기회와, 누군가의 금전적 서포트가 있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어렵다. 데이터를 구하면 그다음은? 그 데이터가 내가 처음 설계했던 논문 디자인대로 결괏값이 나와준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데이터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여태까지 했던 내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다시 논문 디자인, 다시 데이터 모으기의 반복.. 반복..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그때부터 또 본격적인 글쓰기와 수정의 늪이 시작된다.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쓰고, 쓰고, 또 쓰고.. 이 글쓰기는 공저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넘게까지.. 했던 말을 또 바꾸고 또 바꾸고 또 바꾸고.. 온갖 AI 툴을 반복해서 적용하면서 정말 넌더리 나도록 원고를 수정한다.

그렇게 좋은 원고가 나오면? 좋은 저널이 알아봐 줄까? 잊지 말자. 항상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널렸고, 남들은 내가 보지 못한 한계점만 또 얼마나 잘 집어내는지! 원고를 수정하면서 어느 정도 붙었던 자신감은 세상에 내보이면서 깎이고 깎이고 깎여 한 줌의 재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이제는 제발 어떤 저널이든 가주라라고 사정 사정 할 정도..

그렇게 하나의 논문이 완성되는데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3-4년이 걸리니 말 다했지. 하지만 박사 대학원생이란? 이 일을 앞으로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자다. 나는 박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또 하나의 가능성이 짓밟힌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 되뇌인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구분하기. 내가 지금의 역량으로 수정해서 개선시킬 수 있는 거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잠시 쉬어가기. 그냥 때로는, 운에도 맡겨보기. 어떻게 보면 편한 자기 합리화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기. 내가 대학원생으로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은, 공부를 해서 행복한 나와, 공부를 해서 행복할 나를 위함이라는 것을.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나를 망치면서까지 할 가치는 없다는 것을.


끊임없는 자기 혐오와, 자괴감, 그리고 후회 속에 쉽게 빠져버릴 수 밖에 없는 대학원생 생활은 때로는 득도하는 과정과도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다시 한번, 오늘도 화이팅. 충실히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지! 맘껏 헤메면서도 그 과정을 즐겨야지!



2025.03.17. 07:30 AM 씀

2025.04.14. 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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