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인도를 간 것이 2017년도 겨울인데 인도의 첫인상은 너무도 강렬했다.
호불호가 심하다는 인도인데, 나는 '호'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델리, 자이푸르, 자이살메르, 조디푸르, 타지마할(아그라) 이렇게 들른 여행이었는데 문명의 세계를 떠나 과거로 온 느낌, 그 느낌이 좋았다. 그러니까 한적한 시골에 갔을 때 뭔가 잡초처럼 본연의 모습 그대로, 그리고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온 듯한 여유로움 그런 느낌들이다. 인도가 딱 그랬다. 거기다가 무슬림들은 희희낙락을 좋아하는데 인도 무슬림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이슬람 왕국인 무굴제국이었던 인도 북부는 무슬림들이 많다. 사실 통계 발표에 의하면 14%라는데 내 경험으로는 글쎄요다. 북인도에서 마주치는 사람의 열 명 중 6~7은 무슬림이라 느껴진다. 남부도 마찬가지다. 북부만큼은 아니어도 확실한 것은 14% 보다는 많다는 것이다.
그런 희희낙락 유쾌한 무슬림들과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인도는 정말 재밌는 곳이다.
그렇게 해서 인도를 간 것이 세 번이다. 마지막이 2020년 겨울이다.
마지막 2020년 겨울에 인도를 갔을 때, 인도에 갔던 것은 한 인도인 때문이다.
'빌랄'이라는 인도인은 무슬림으로 그 전 해인 2019년도 겨울에 인도 코친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코친은 부유한 께랄라주의 중심도시로 과거 향신료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유대인들도 많은 인구가 정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 떠나고 유대인 마을이 주요 관광지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곳은 힌두, 이슬람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회도 많다.
서른 살의 숙소 매니저로 일하고 있던 그는 매우 친절했다.
"인도인 친구가 없다고요? 걱정마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저런 말을 한다고 해서 모두 친밀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빈말임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런데 빌랄은 매우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는 여기저기 관광지를 직접 오토바이를 태워주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하루만 묵었던 숙소이다. 이유는 모기떼가 너무 심하게 설쳐대서 도저히 있을 수 없어 다음 날은 숙소를 옮겼기 때문이다.
2020년 겨울, 휴가 기간이 다가오고 여행지로 어딜 갈까 고민하던 나는 이상하게도 한 사람의 목소리가 머리에서 욍욍 울린다. 빌랄이다. 사실 하루만 지냈던 숙소에서 본 인물이고, 그다지 많은 대화를 한 것도 아니다. 왜 자꾸 빌랄의 목소리가 들리지? 며칠 그러다가 난 인도행 비행 편을 끊었다. 이번에는 요가 체험하며 힐링을 해보자. 목적지는 고아Goa이고, 아웃행 비행 편은 코친Kochin이었다. 코친은 교통의 요지로 비행 편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인도 여행 막바지 코친으로 왔을 때, 난 필사적으로 나의 육감을 거부하려 애썼다.
빌랄을 만났던 숙소로 가지 않고, 일부러 멀찍이 있는 다른 숙소를 찾았다. 이런 곳이라면 길거리에도 마주칠 일이 없을 테니.
그런데 짜잔!
그 찾아간 숙소에서 마주친 이는 다름 아닌 빌랄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이긴 하나, 이건 뭐 누구의 장난질 같은 이 상황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가 날 기억했더라면 내가 일부러 본인을 보러 산넘고 물건너 왔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는 전에 일했던 숙소에서 나와서 자신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빌랄은 싱글벙글 들떠있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한 지 3개월 됐다고 한다.
벽에 페인트칠된 그림들도 자신이 직접 그렸다며,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했다. 아직 인테리어나 리모델링할 게 많은 숙소 내부를 손보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그는 천성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듯하다.
키도 작은 데다 미남형 얼굴도 아닌 그의 주변에는 유럽인 여행객들이 항상 웅성웅성 껌딱지처럼 붙어있다.(나도 그 무리 중 하나였긴 하지만)
그리고 나는 무사히 귀국했지만, 나의 귀국 후 인도는 무사하지가 않다.
코로나가 터지고 인도가 코로나 지옥이라는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게스트하우스 손님은 오니?" (나)
"아니, 격리된 손님만 3명 정도 있어요." (빌랄)
"그럼 월세는 어떻게 내?" (나)
"아, 미칠 거 같아요.... 그래도 걱정마요, 다 잘될 거예요." (빌랄)
개업한 지 3개월 만에 코로나가 터지고, 그는 손님도 오지 않은 건물에 월세만 내고 있는 꼴이었다.
이건 무슨 누군가의 장난질과도 같이 왜 어떤 이에게는 꿈이 이루어질 기회를 박탈당하는 걸까?
"No money, no honey (돈 없으면 사랑도 없어요)"
이렇게 말하던 그는 자신의 사업을 꾸려, 돈 좀 모아서 멋진 사랑을 이루는 것이 꿈이었다. 지구 몇 바퀴를 돌아도 이런 꿈은 누구에게나 공통사일 게다.
여행객들에게 일일이 메뉴를 주문받아 직접 나가서 음식을 사들고 와 저녁을 함께 둘러먹던 그는
분명 코로나만 없었어도 코친의 잘 나가는 사업가가 되어있을 거다.
얼마 전 빌랄에게 오랜만에 왓츠앱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운영하던 게스트하우스 폐업했다는 것이다.
'엥? 폐업을 지금 했다고?'
뜬금없이 이런 메시지를 왜 보냈나 했더니, 내가 또 그곳을 찾아갈까 염려했나 보다.
그렇다면 거의 2년을 손님도 몇 오지 않았을 건물에 월세만 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건물 주인아줌마가 못됐다고요! 탐욕스러운 인간 ㅠㅠ"
이러면서 그는 치를 떨었다.
지금은 뭐 하고 있으려나... 물어보기도 미안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