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희는 긴 검은 생머리에, 알사탕과 같은 동그란 눈을 가졌다. 항상 방글방글 웃는 그녀, 그 웃음 소리가 상쾌하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 같지는 않은데, 언젠가 부터 나는 강한 끌어당김의 법칙을 체험한다.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항상 인연이 생기게 된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또 스멀스멀 발동이 걸렸다. 어느날 수희는 나에게 다가왔다. 15명의 연수생 중에 가장 눈에 들어왔던 그녀 역시 내가 쏜 자력에 이끌렸나보다. 나는 그녀에게 '그리스인 수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검은 긴생머리, 크고 동그란 눈, 그녀의 모습은 그리스인을 닮은 듯 이국적이고 매력적이다.
주말에는 집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호주인 체험을 해보자 이랬던 나였다. 그래도 주말 한번 쯤은 색다른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퀸즐랜드 대학 내에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여러가지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다 차고, 두어개 밖에 남지 않았다. 젊은피 팔팔 넘치는 수희는 호주에서 스카이 다이빙도 하더니, 이번에는 스킨 스쿠버를 해보자고 한다. 가격은 100~120달라 정도(미달러). 사실 운동에 소질이 없는 나는 레포츠는 나와 인연이 없다 생각한 영역이다. 그래도 남이 하자는 걸 할때 항상 재밌는 일이 생긴다.
집결장소는 버스터미널이다. 아침 일찍 나서 버스터미널로 가서 플랫화이트 한잔을 마시며, 다른 일행을 기다리는데 저쪽에 수희가 보인다. 그녀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길래 보니 일본인들이었다. 퀸즐랜드 대학 테솔프로그램에 일본인 영어교사 연수생들이 왔고, 그들은 단체로 스킨스쿠버를 하러왔다. 우리는 한달이지만 그들은 3개월 연수라고 했다. 그리고 휴대폰도 보조받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조용조용 혼자 자기 볼일 만을 보는 일본인만 보아오다가 그렇게 말도 잘하고 쾌활한 일본인들과의 동행은 즐거웠다. 수희와 나는 나이를 속이고 어린척을 했다. 그런 우리에게 한 일본인이 "그렇게 안보이는데요, 동안이시네요." 이렇게 아낌없는 립서비스 해주는 센스까지 참 착한 녀석들이다.
승합버스를 타고 우리는 몰튼 아일랜드에서 내렸다. 그때 우리나라는 7월 여름이지만, 호주는 겨울이다. 아무리 겨울이 따듯한 호주라지만 그래도 물은 차갑게 느껴진다. 서른명 정도의 투어객들을 오전팀, 오후팀 두 팀으로 나누어 물속에 들어가게 된다. 나와 수희는 얼른 오후팀 마지막 자리에 끼어들어갔다. 그리고 일본인 교사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오전팀에 배치되었다. 오전팀이 스킨스쿠버를 하는 동안 오후팀은 카약kayak을 타면서 기다린다. 처음 타보는 카약이지만, 노 젓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불쌍한 일본인들, 스킨스쿠버를 마치고 물속에서 나올 때는 파리한 얼굴로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그 모습이 그토록 애처로울 수가 없다. 수희는 슬쩍 나에게 속삭였다. "우리도 오전팀이었더라면 큰일날 뻔했네요..."
오후의 물은 훨씬 따뜻했다. 물개옷과 에어조끼를 입고 고글 쓰고, 오리발 신고 그렇게해서 물에 들어가기 전에 지시사항을 듣는다. 몰튼moreton 아일랜드는 과거에 배가 난파했는데, 그 가라앉은 난파선에 아름다운 고기떼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우리는 그 난파선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하는데, 가는 방법이 그럴줄이야. 작은 보트에 줄이 매달려 있고, 우리는 그 줄을 잡고 물에 떠서 물살을 해치며 가는 것이다. 그냥 줄만 잡고 가만있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벼랑끝에서 손가락으로 매달려있는 듯한 고난도 체력과 인내가 요구되는 것이었다. 수영도 못하는 내가 이 줄을 놓치면 그대로 바다 미아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고생한 댓가로 상을 받듯이 처음 해보는 스킨스쿠버는 신나는 체험이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내가 제일 부진아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능수능란하게 잘도 헤엄치면서 바닷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강사가 내미는 부판을 꽉 부여잡아가며 소심하게 바다안으로 들어갔다. 워낙에 운동신경도 없는데다 겁쟁이인 나는 내내 바들바들 떨면서 움직였지만, 바닷속 구경은 잊지못할 체험이다. 이 곳에서 둥둥 떠다니다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스킨스쿠버를 마치고는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여 샌드보드를 타러간다. 스노우보드와 똑같이 생긴 보드판을 발로 올라타는 것이 아닌, 누워서 배로 올라탄다. 그리고 높은 모래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간다. 짧은 시간동안 스릴 넘치는 경험을 하지만, 마지막 샌드보드가 멈췄을 때 내 입속엔 모래가 한가득했다.
일본인 교사들이 제안을 해온다. 그들은 한국인 연수생들에 관심을 보였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 모두 모여서 학교내에서 점심을 함께하자고 한다. 음.... 한국인들은 그들 울타리에서 노는걸 좋아하는데(그 이유를 알기에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과연 오케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항상 색다른 체험을 추구하는 나야 대환영이지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