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브리즈번, 퀸즐랜드 대학
역시 예상했던 바 대로였다. 한국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던 일본인들과 달리, 우리 한국인 연수생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수희와 나만 참석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학교 식당에서 모였다. 일본인 중등학교 영어교사들 역시 대략 15명 정도 되는 듯 했다. 어느 누구하나 튀는 법 없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단체로 어울려 다니는게 좋아 보인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일본 학교라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업무는 과중하고, 때때로 민원인과의 마찰로 인한 스트레스, 물론 우리 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나을거라고 믿고싶긴 하지만. 보수는 우리보다는 높은데, 그들의 물가와 주거비를 따져본다면 물가대비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중등 영어교사라지만 영어 실력은 글쎄다. (좀 많이 아쉬운 것 같다) 하긴 그들은 영어를 중학교때 부터 배우니 그다지 수준 높은 실력이 절실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 나라의 중등 영어교사들은 그래도 원어민 보다 조금 아쉬운 수준이니 그래도 우리가 나은 것 같다.
"저는 정말 한국인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마사꼬, 나에게 쪽지를 건네주며 말한다. 합창 클럽에서 한국인 연수생을 만나서 연락처까지 교환했는데, 아무리 연락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더란다. 그 쪽지안에는 연락을 기다린다는 메세지가 적혀있었다. 그것을 나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다. 얼마나 연락을 기다렸는데, 그럴 수 있냐며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일본인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동안 보아온 일본인들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속에 뭐가 있건 내가 볼 수 있는것도 아니고, 일단은 온화하고, 항상 미소짓는 얼굴에, 약속을 잘 지키고 불편한 언사를 하지 않는 등 남에 대한 배려의식이 철저한 그들과 있으면서 불쾌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동안 여행지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먼저 말을 걸거나, 먼저 같이 놀자는 제안을 하지 않는게 특징이고, 개인주의로 혼자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계산에 있어서 항상 철저히 개인주의 원칙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때문에, 가끔은 당혹스러울 때가 없는건 아니다. 아무튼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모든 일본인들이 다 그런줄 알았을 것이다. 그들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정을 나누어주는 한국인들과 똑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는 걸 보았으니 이제 그동안 쌓아온 일본인들의 이미지에 수정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의 짧은 일정이 아쉽기만 하다. 그들은 아직도 2개월을 더 남겨두고 있었다. 일정만 더 길다면 그들과 더 어울려 보고 싶었으나, 이렇게 한두 번의 만남으로 두터운 인연이 되는건 쉬운게 아니다. 물론 헤어지면서 연락처를 주고 받을 때는 정말 매일 연락해가며 끈끈한 우정을 주고받을 것 같다. "우리나라 오면 꼭 연락해, 약속! 우리집에서 자고가는 거다." 헤어질 때 항상 주고 받는 단골멘트이다. 하지만 그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인연이 지속되는 사람은 몇 명 뿐이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마사코와 그녀의 친구 스즈키와 함께 다시 만났다. 우리는 사우스뱅크를 따라 걸었다. 사우스뱅크는 강변을 따라 조성된 복합 레저단지이다. 그들은 그날 그곳에서 카누 강습을 받는다고 한다.
"그들은 monster야, monster!"
업무상 부딪히는 스트레스 이야기하며 내가 monster라는 표현을 쓰자, 마사코는 재밌다며 자신도 'monster!'따라하며 웃는다. 그 모습에 스즈키는 '어머낫'하며 놀란다. 일본인들을 보면 가끔 이슬만 먹고 살아온 사람인것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스즈키는 마사코에게 그런 거친 언어를 쓰는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날 저녁 우린 "우리나라 오면 꼭 연락해, 약속! 우리집에서 자고가는 거다." 이 고정멘트를 주고 받으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