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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Nov 16. 2023

초보 주부에게 저녁상이란

이것은 나의 습작노트

결혼 2년 차, 남편을 위한 "저녁상" 차리기는 초보 주부인 나에게 여전히 하나의 미션이다. 서른이 될 때까지 프로 주부인 엄마 덕분에 밥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나는, 결혼 전 2년 동안 혼자 독립해 살면서 요리의 세계에 입성했다.


처음엔 모든 게 새로웠다. 열정이 뿜뿜 했다. 곤드레나물을 사서 열심히 불리고 삶아 곤드레나물밥을 해먹기도 하고, 쑥을 사서 벌레와의 전쟁을 한 바탕 치른 뒤 향긋한 쑥전을 부쳐먹기도 하고, 표고버섯을 사서 탕수육 뺨 때리는 표고버섯강정을 만들기도 했다. (사실 뺨은 아니고 엉덩이 정도 때림)


열정은 1년이 채 가지 않았다. 냉장고는 점점 비워지고 냉동실은 점점 채워졌다. 그래도 다행히 건강을 엄청 챙기는 편이라, 자연식과 가공식 사이에서 나름대로 적절히 줄다리기를 하며 한 해를 더 보냈다.


결혼을 한 후 평일 저녁은 나의 담당이 되었다. 자취 경험이 없었다면 저녁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랑 김만 주구장창 올라왔을 터인데, 그동안 내가 혼자 지지고 볶고 했던 짬바가 있는 것이 남편에게는 행운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부족한 실력으로 열심히 저녁상을 차리고 남편은 맛있게 먹어준다.


그저께 오랜만에 김치전을 했다. 유튜브에서 성시경의 김치전 레시피를 봤는데 노릇노릇하니 맛있어 보이는 게, 마침 엄마한테 김치도 받아왔겠다 지금 하면 딱 좋겠다 싶었다. 정확히 그 레시피대로 한 것은 아니고 참고해서 내 방식대로 만들었다.


김치 썰어 넣고 양파도 넣고, 이전에 쓰고 오갈 데 없이 냉장고에서 나뒹굴던 남은 깻잎도 넣고, 설탕, 고춧가루 넣고 재료 준비 끝.


이제 물을 넣는데 아뿔싸! 물을 너무 많이 넣었다. 레시피 안 보고 눈짐작으로 한 탓이다. 나는 밀가루 부침가루 대신 타피오카 전분 가루를 이용해 전을 하는데, 물이 많아서 전분 가루를 엄청 많이 넣어야 했다. 이것이 실수였다.


아무리 휘저어도 되직해지지 않는 묽은 반죽을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프라이팬에 투척했다. 지글지글지글. 모양새는 그럴듯했다. 뒤집개로 뒤집을 때도 전이 찢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비주얼이 좋으니 마음이 놓였다. 마지막엔 치즈를 뿌리는 여유까지 부렸다.


옆에는 해물 동그랑땡입니다. (머스터드소스 뿌릴 예정) 옆에 멸치볶음도 있다구요.


저녁상을 차리고 두근두근 남편의 감상평을 기다렸다. 남편은 김치전을 한입 물었다. 우물우물.


”음~~~ 맛있어!!!“


남편은 맛있다며 감탄했다. 아, 그런데 뭔가 2% 부족하다. 진짜 맛있을 때 나오는 톤이 '도레미파솔라시-'라면 이건 '도레미파솔-' 정도랄까. 안 되겠다. 내가 먹어봐야지. 김치전 끝부분을 젓가락으로 쭈욱 찢었다.


근데 웬걸? 모름지기 전이라면 바삭하니 툭 찢어져야 하는데 끈적~하다. 전분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탓이다.

제발 맛이라도 있었으면. 입에 넣고 씹어보니 역시나 끈적한 식감에 군데군데 재료가 적은 부분은 말캉거리기까지 하다.


남편에게 '겉바속촉' 김치전을 맛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캉말캉' 김치전이라니. 깻잎을 썰어 넣을 때까지만 해도 남은 재료 알차게 쓰는 나 자신을 내심 칭찬했었는데.


시무룩한 나에게 남편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너무 맛있다고 나를 추켜세운다. 그리곤 그 크고 넓적하고 끈적한 김치전을 끝까지 다 먹고는 끝내 빈 접시를 만들어놓았다.


어쩌면 남편은 진짜 맛있게 먹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는 척하며' 나는 식탁을 정리했다. (설거지는 남편의 몫)


이날은 아침부터 조금 무기력했다. 축축 처지는 몸을 이끌고 에너지를 끌어모아 김치전을 했더니만 내 상태나 김치전 상태나 별 다를 바 없었다. 역시 음식도 만드는 사람 에너지를 따라가나 보다. 내일은 또 뭘 해 먹나? 고민하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저녁엔 최근에 올린 영상 댓글에 답글을 다는 시간을 가졌다. 댓글에 담긴 정성과 사랑을 음미하며 꼭꼭 씹어 삼켰다. 아까 내가 만든 김치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영롱한 댓글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건데 영상 앞에 멈춰 서서 타닥타닥 진심을 전해주는 구독자분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겸허해진다. 나도 이렇게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보답할 수 있는 게 영상밖에 없는데 오늘 비가 와서 방이 칙칙하다는 핑계로 촬영을 하지 않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기 비스무리한 글에 내 일상 한 조각을 담아 올리면 이것 나름대로 또 재밌게 봐주지 않으실까? 하고 수줍어하며 열심히 쓰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기특하기도 하다. (아주 조금)


이 글은 수요 없는 공급일 수 있으나, '공개적으로 쓰는 습작노트'라고 평하며 눈곱만큼 가치를 부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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