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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Nov 18. 2023

선택을 어떻게 하냐고요?

감(感)으로 합니다.

다음 주는 결혼기념일이다. 연애를 12년 하는 동안 100일, 200일, 3주년, 5주년, OO데이부터 해서 숱하게 많은 날들을 함께하면서, 기념일은 이제 특별한 선물을 주고받기보다는 맛있고 고급진 음식을 먹는 '먹방 데이'가 되었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아시안식, 인도식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기념일 외식 메뉴로 단연 으뜸인 것은 일식 '오마카세'다. 오마카세는 주방장이 초밥을 하나하나 쥐어서 차례대로 내어주는 일본식 코스 요리다. 가격이 비싸서 자주는 안 가지만 기념일 쿠폰을 들이밀면 한껏 당연스럽게 갈 수 있다.


며칠 전 남편이 오마카세 6군데 링크를 보내주고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 했다. 결혼기념일은 다음 주지만 원하는 곳에 가려면 미리 예약을 해놔야 한다. 나는 사실 식당을 예약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에야 먹고 싶어서 예약하지만, 막상 그 당일에 내가 다른 게 먹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난 그날의 욕구에 충실하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오마카세 예약은 때로 수강신청과 맞먹을 정도로 빡세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링크를 하나씩 클릭했다. 자, 어디를 선택해 볼까?


첫 번째 집. 사진이 뜬다.

집중할 시간이다. 심호흡을 한 번 한다.


내 느낌이 어떻지?


가격, 위치, 리뷰도 중요하지만 일단 내 느낌을 먼저 본다.


나는 무엇이든 선택할 때 이렇게 한다. 내 느낌이 어떻지?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 내가 그 공간에 있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느낌. 그러면 나에게 옳은 선택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오, 그런데 첫 번째 집이 바로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저 공간에서 벽 장식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격? 위치? 좋다.


그래도 일단 두 번째 집으로 넘어가 본다. 나에겐 지금 6개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나도 놓칠 수 없지.


슥슥 훑어본다. 딱히 느낌이 안 온다.

세 번째, 네 번째..


여섯 번째 집까지 봤을 때, 나는 첫 번째 집에 가기로 결심했다. 위치가 별로인 곳을 제외하고 가장 느낌이 좋은 곳이었다. 어딜 갈지 정하기까지 딱 5분 걸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느낌이 좋은 것(직감을 따르는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언제나 나에게 감탄할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대게는 좋지만,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직감을 따르는 훈련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 능력은 훈련할수록 발달되며, 종종 좋은 느낌이나 안 좋은 느낌이 강하게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십중팔구 정확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안 좋은 느낌'일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는 목과 어깨가 무겁고 뻣뻣해지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첫 번째 집으로 결정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캐치테이블(예약 어플)을 켜고 예약을 하려는데, 엥? 결혼기념일에 예약가능한 시간이 없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없다. 날짜들을 연이어 클릭하는 짓을 대략 40번쯤 했을 때, 12월까지 풀타임 마감인 것을 알았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였는데! 느낌이 왔는데!


혹시 몰라서 이번 주 남은 날짜들도 일일이 클릭해 봤다. 와, 근데 딱 한 타임 남았다. 눈이 확 뜨인다. 이건 못 놓치지! 결혼기념일은 며칠 남았지만, 그게 뭐가 대수랴? 그날엔 집에서 알콩달콩 재밌는 거 보고 맛있는 디저트 먹으면서 놀면 되지. 일단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한 타임의 꽁무니를 꽉 잡아놓은 것으로 미션 완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오늘이 먹으러 가는 날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가 화창하고 좋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우중충하니 이상한 낌새를 보이더니 갑자기 비가 내린다. 비가 올 때 회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낭설이라고, 지금이 한여름도 아니고 무려 11월이니 회는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살짝 열감이 있는데, 평소라면 이럴 때 약을 먹지 않고 그냥 쉬겠지만 오늘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저녁을 먹고 싶기에(비싼 식사니까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 혹시 몰라 방금 감기약 한 알을 먹었다. 이제 조금 쉬다가,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오마카세 후기는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총총 (갑자기 존댓말)


*11월 16일의 에피소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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