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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Apr 10. 2024

기안84 전시회를 보고 와서

인상 깊었던 작품들

지난 주말, 성수에서 열린 기안84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엄청난 팬심이 있어 간 것은 아니었다. 두 달 전, 남편이 기안84 개인전이 성수에서 하는데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재밌을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오케이 했을 뿐. 티켓 가격도 1인당 8,400원으로 저렴해 부담이 없었다.


그의 그림 스타일을 대충 알고 있었기에 만화 캐릭터 같은 그림체를 보고 별다른 감흥이 있을까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 깊은 전시회였다. 가길 잘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네잎클로버(행운). 2년 전, 몸이 아픈 아이에게 사인을 해주며 덕담을 써줄 때, '힘내라, 파이팅, 건강해'와 같은 말들이 너무 무책임한 말로 느껴져 한참을 고민하다 네잎클로버를 그려주었다고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능과 노력 이상의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작품 속에 네잎클로버가 많이 등장한다.


시간
10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청춘'이라는 보물은 얼음처럼 빠르게 녹아내렸다.
하지만 내 욕망은 가장 높은 자리의 왕관을 바라봤던 것 같다.



성공을 상징하는 롤렉스 시계와 눈동자에 비친 왕관(욕망). 그리고 내가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녹아버린 시간과 청춘.


작품이 너무 직관적이라 보는 순간 메시지가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이 그림을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 허무함을 느꼈을까? 그리움? 전시회에서 흘러나오는 몽환적인 음악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기안84의 감정에 이입해서 작품을 봐서인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빛나는 자화상
인정받고 싶다. 사랑받고, 빛나고 싶다. 네잎클로버처럼 행운 가득한 일들이 펼쳐지고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큐빅 같은 것을 박아 만든 대형 그림. 모든 사람이 공감했을 거다. 누구나 인정받고 사랑받고 빛나고 싶고, 내 인생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니까.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서 대중 앞에 드러내기 쉬운 것은 아니다. 조금은 감추고 싶은 욕망들이기에. 기안84의 꾸밈없고 솔직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 작품이었다.


구름 1
내 안의 감정들은 여름철의 장마처럼 예측되지 않고 불규칙하게 내 마음을 지배한다.
때때로 적란운처럼 무섭게 커지는 그 많은 감정들이 다 지나가고 다시 파란 하늘이 뜨기를..



나는 감정은 잠깐 피고 지는 연기 같은 것, 혹은 지나가는 구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안84도 감정을 구름으로 표현한 것을 보니 내심 반가웠다. 조금 다른 의미의 구름인 것 같기는 하지만.


기안84는 감정들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했다고 설명했지만,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렇게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다행히 감정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슬픔이란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중이군. 꽤 큰 놈이야. 하지만 곧 파란 하늘이 뜨겠지.'


힘든 감정이 몰려올 때마다 감정을 캔버스 위로 꺼내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그 외 몇 작품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안84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자유롭게 사는 독특한 캐릭터라고 생각했고 딱히 호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 혼자 산다'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기안84의 여러 모습을 접하면서, 보면 볼수록 참 진실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솔직하고, 가식 없고, 겸손하고 인정 많은 사람.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찔끔거릴 만큼 외로워하면서도, 인도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 현지인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그리고 보는 우리를 박장대소하게 할 만큼)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고, 냉동실에 얼려놓은 배달 음식과 편의점 도시락을 한 번에 섞어 비벼먹을 만큼 세상 대충 사는 사람 같아 보이면서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다.


최초로 비연예인으로서 연예대상을 수상한 다음 날, 역사적인 순간에 취해 흐트러질 법도 한데 평소와 똑같이 작업실로 가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기안84에 대한 내 인상은 '특이한 사람'에서 '재밌는 사람'으로, 그리고 '대단한 사람'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변함없이 허세 없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오랜 시간 대중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게 아닐까.


전시회를 다 돌아보는 데는 2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여운이 남는 전시였다. 아쉽게도 남편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감동에 젖어 전시회를 나서는 나에게 남편은 한 마디 했다.


"확실히 F야."


나도 한 마디 해줄걸. 오빠 T발 C냐고^^ 여운에 젖어있느라 대꾸를 못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자유롭게 살며 승승장구하길 응원합니다, 기안84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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