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프로 Apr 19. 2024

남편의 행복을 존중하는 법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남편이 인터넷으로 양말을 샀다. 양말은 생필품이다. 필요에 따라 사는 게 당연하다. 서랍장에 남편의 양말이 이미 한가득 있지만 그래도 또 사도 된다. 봄을 맞이해 산뜻하게 새 양말을 신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남편이 양말을 사겠다는데 말릴 아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서론이 길었던 이유가 있지 말입니다.


양말을 샀는데


양말을...










크레파스인가


... 이만큼이나 샀다. 서랍장에도 잔뜩 있는데, 무려 13켤레나 더 샀단 말이더냐. 색깔도 알록달록 골고루도 샀다.


어제저녁 양치를 하고 있던 나는, 남편이 택배 상자에서 양말 뭉치를 꺼내 바닥에 정갈하게 정리해 놓는 모습을 보고 손을 멈추고 말았다. 하나, 둘, 셋, 넷... 열 세 켤레? 내가 지네랑 결혼했나?


"헥~~ 양말을 왜 이렇게 많이 샀어?"


"쿠폰 있어서 여러 개 샀어."


"양말 지금도 많잖아!"


"빵꾸난 거 몇 개 버려야 돼. 양말 많으면 좋지. 빨래 자주 안 해도 되고(나한테 점수 따려고 한 소리)."


"오 마이 갓~~ 들어갈 자리도 없다. 색깔도 진짜 다양하네. 이거 다 신을 거야? 이 노란 건 언제 신게?"


"당연하지. 어떤 바지랑 신을지 다 생각하고 샀는데."


"푸풉..."


유치원생처럼 쭈그려 앉아서 색색깔의 양말을 정리하는 남편을 보고 나는 웃음이 터져 칫솔을 꾹 물고 황급히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새 양말들 위에 치약을 튀길 순 없으니까. 잽싸게 헹구고 나와서, 남편에게 물었다.


"지금 서랍에 넣을 자리도 없어. 그럼 그만큼 있던 거 비울 거야?"


여기서 잠깐, 나의 살림 철칙 하나: 한 개 사면 한 개 비우기. 가능하면 지키려고 한다. 그래야 깔끔한 집을 유지할 수 있다.


"비울 거 있어!"


"그럼 지금 얼른 정리하든지."


남편은 총총 방으로 뛰어들어가 서랍과 빨래통을 뒤지더니 짝이 없는 양말과 구멍 나기 직전의 양말 몇 개를 가져왔다. 그래봤자 4켤레.


"4켤레를 버리고 13켤레를 들이시겠다...? 으유!"


패션에 관심이 많고 뭐 하나 대충 사지 않는 남편. 양말 사는 데 거의 5만 원을 썼단다. 남편은 특유의 새침한 표정으로 나를 흘긋흘긋 보며 양말을 주워 모았다. 아, 얄미워. 근데 귀여워.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온다.


"오빠는 이렇게 옷에 맞는 양말 골라 신으면서 행복을 느끼잖아, 그치?


"그렇지, 난 너무 재밌지."


"그럼 됐어. 오빠가 행복한 게 좋아."


"할 말 다 하고 갑자기?"


"사람마다 기쁨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잖아. 양말 맞춰 신으면서 행복하면 좋은 거지. 오빠의 행복을 인정해. 예쁘게 신어!"


나는 옷이나 양말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남편은 나와 다르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내 것을 살 때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 패션 센스를 배울 수도 있다. 나와 다른 모습을 보는 게 재밌기도 하고.


남편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남편의 사소한 취향도 존중하는 아내가 되고 싶은 마음. 물론 잔소리는 좀 했지만요.


양말을 한가득 품에 안고 방으로 가면서 남편이 중얼거렸다.


"음, 근데 내가 봐도 좀 많이 사긴 한 듯."


양심은 있구만!


매거진의 이전글 소파 도착! 미니멀 거실에 딱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