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n Sep 29. 2020

우리 가족의 청춘기록

엄마는 드라마에서 나를 보았고, 나는 엄마를 보았다.

아 이제 나가야돼요. 옷 괜찮아요?


본가와는 꽤 거리가 있는 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나는, 간만에 구매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는 나를 멈춰놓고서 엄마는 내게 스카프를 메어주셨다. 


나는 스카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는 청춘기록이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글쎄 박보검 혼자 이걸 목에 하고 있다는 이유로 "요즘 애들은 다 이거 하고 다니더만" 이라고 나를 설득하셨다.


주변에서 이런 스카프 하는 친구들은 본 적도 없거니와 내 취향도 아니지만, 1주일에 몇일 보지도 못하는 어머니가 원하는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스카프를 메고 고속버스까지 올라탔다.




청춘기록이 그렇게 재밌나..?

엄마가 청춘기록을 보실지는 몰랐다. 나는 이걸 보기 전까지 그냥 유명한 연예인 내세우는 한국의 비현실적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박보검이가 말 하는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들더라.

엄마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였다. 엄마의 말씀에 혹해서 1화를 틀었지만, 나의 구미를 크게 당기지는 못했다.

2화에서 이 드라마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과제를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여유가 생긴 오늘 밤, 청춘기록을 보고 적잖게 울어버렸다.



엄마는 드라마 속에서 나를 봤고 나는 드라마 속에서 엄마를 봤다.


가장 보통의 가족. 같은 한남동 속에서 다른 이미지 연출을 포함한, 가정 속에서 순탄한 인생을 산 형과 도전적으로 살아온 듯 하지만 실상은 꽤나 착하게 살아오려는 프레임 속 노력한 혜준(박보검).


2화까지 본 상황에서 엄마와 차 안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 : 엄마가 좋다한 드라마 봤는데, 좋더라구요. 뭔가 보면서 우리 가족이 떠올랐달까
엄마 : 그런가? 보는데 모든 사람들이 이해 되더라. 꿈을 쫓는 혜준이도 그걸 말리는 아빠도.
나 : 그러게요. 그래서 언제 제가 엄마 아빠한테 저런 답답한 아들이 될 지, 어떤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 때는 그랬지만, 내가 본 3화에서는, 좀 더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나왔었다.

나는 그 어머니가 하시는 대사들이 너무 감명깊었다. 나는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던게 맞을까? 

내가 공감된다고, 공감되었다고, 우리 가족같다고 섣부르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인지 다시 곱씹게 된다. 



우리 엄마는 주인공의 엄마와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드라마 속 귀여운 남편을 가진 혜준 엄마보다 더 힘들지도. "근데 엄마 인생하고 니 인생은 다른거야. 내 인생 때문에 너가 기 죽을 이유는 없어" 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오늘은 더 애절하게 와닿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봉 10억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엄마 호황시켜주겠다며, 고속버스 타러 나섰던 나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과거 회상을 마친 혜준이의 엄마 처럼 내게 미안해 하셨을까. 아니면 드라마 처럼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셨을까. 


미술학원을 보내주겠다며 노력하셨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이렇게 까지 해서 미대 입시 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했던 내게 말했던 엄마의 말들이 너무 떠올랐다. 나는 드라마에서 엄마를 보았다고. 내가 이 드라마를 고등학생 때 보았다면, 좀 더 내가 자유로울 수 있고 좋았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비교하며 경쟁하지 않는걸 좋은 성품이라고 속여왔다고 말한 혜준이의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이 드라마에 대해서 적고 싶은 이야기들이 앞으로 많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밤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