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인 1994년, 아프리카 중부의 소국 르완다에서 80만이 넘는 사람들이 제노사이드의 제물이 됩니다. 불과 석 달 동안 자행된 살육이었고, 살육의 도구가 정글도라 부르는 마체테라는 칼이었기에 동세기에 자행된 다른 인종학살과 비교해도 끔찍함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유럽국가의 아프리카 침탈은 19C 중반에 본격화됩니다. 아메리카에 비해 늦어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말라리아 덕분입니다.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력이 없던 백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죽음의 땅입니다. 19C 중반 말라리아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키니네 요법이 보급되면서 아프리카 내륙에 대한 유럽국가의 침탈이 시작되고 아프리카 주민들은 참혹한 식민지의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1899년 르완다는 부룬디와 함께 공식적으로 독일의 식민지가 됩니다.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물러나고, 1919년부터는 벨기에령으로 바뀝니다. 벨기에는 식민통치를 위해 소수부족인 투치족을 이용해 다수부족인 후투족을 관리합니다. 이질감 없이 어울려 살던 두 부족 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식민지 관리자가 투치족에게 명령합니다. ‘후투족에게 채찍을, 아니면 너희가 맞을 것’.
1950년대 말,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 요구가 높아지자 투치족도 독립을 위해 움직입니다. 반면 후투족 사이에 독립 후 지배층으로 들어서게 될 투치족에 대한 우려가 생겨나면서, ‘반투치’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벨기에는 투치족을 억누르기 위해 이번에는 후투족을 지원합니다. 1959년 후투족이 일으킨 반란과 학살로 수많은 투치족이 살해되거나 이웃 나라로 피난합니다.
1961년, 르완다는 독립해 공화국을 선포합니다. 투치족을 이용해 식민지를 통치하던 벨기에는 보호장치 없이 후투족에게 권력을 넘깁니다.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핍박이 시작됩니다. 소규모 학살이 이어지던 1987년, 투치족은 우간다에서 르완다 애국전선(RPF, Rwandan Patriotic Front)을 결성합니다.
1994년 4월6일,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피격되자 다음 날부터 3개월간 후투족이 투치족과 후투족 배신자를 상대로 80만 명이 넘는 학살을 자행합니다. 학살 직전 르완다의 인구는 800만명으로 후투족 85%, 투치족 14%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당시 희생자의 75%가 투치족, 나머지가 후투족이었답니다.
후투족 출신 대통령의 암살로 시작된 대살육은 7월4일 투치족의 RPF가 수도를 점령하면서 끝이 납니다. 벨기에가 식민통치 수단으로 민족 차별 정책을 쓰기 이전까지 투치족이 왕족을 형성하긴 했어도 오랫동안 공존하며 같은 문화와 언어를 사용해 온 두 종족은 별다른 갈등 없이 지냈다고 합니다. 결국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을 광풍처럼 휩쓴 제국주의의 망령이 세기말까지 이어져 참상을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21C의 문명, 인권, 도덕을 외치는 유럽국가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폭력적이며 반인륜적인 행위를 주도했던 국가들이니 역사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