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기원전 576년, 춘추시대 소국이었던 위나라 군위에 위헌공이 오릅니다. 아첨하는 무리를 가까이하고 음악과 사냥을 즐긴 위헌공은 방종했습니다. 이로 인해 군신 간에 반목이 생깁니다. 대신인 손임보와 영식에게 반역의 뜻이 있다는 것은 눈치챈 위헌공이 오찬을 함께하자며 이들을 불러놓고는 저녁때가 되도록 만나주지 않습니다. 모욕감을 느낀 두 사람은 위헌공을 쫓아내고 그의 동생 공자 표를 군위에 세우기로 공모합니다. 손임보가 모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위헌공이 사람을 보내 화해를 청하나 손임보는 군주가 보낸 사람을 죽여 반역에 대한 결기를 확고히 합니다.
반역을 확인한 위헌공은 군사를 소집해 손임보를 공격하려 하나 대신들이 응하지 않자 공손정과 동복동생인 공자 전을 데리고 제나라로 달아납니다. 기원전 559년, 표가 군위에 올라 위상공이 됩니다. 당시 패권국인 진(晉)나라가 반정을 바로잡아야 했으나 군주인 진도공이 병중이라 문죄하지 못합니다.
손임보와 영식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영식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 영희를 불러 유언하길. “위헌공을 쫓아낸 사람은 손임보인데 세상은 내가 그 일을 함께했다고 한다. 내가 죽거든 옛 임금을 모셔다 군위에 올려라. 그래야 내 잘못을 조금이라도 씻을 것 같다.”
영식이 죽고 영희가 좌상의 벼슬에 오릅니다. 그러나 위상공이 선정을 펼쳐 나라는 안정되고 상경 손임보가 군주를 몰아낼 틈을 주지 않습니다. 위헌공이 공손정을 몰래 보내 영희를 만나 자신을 복귀시키면 정치를 모두 맡기고 자신은 종묘 제사만 관여하겠다고 제안합니다. 영희는 위헌공이 복귀한 뒤 마음이 변할 것을 염려해 공자 전을 증인으로 세우려 합니다. 위헌공이 공자 전에게 영희를 만나게 합니다. 그러나 공자 전은 대답만 할 뿐 영희를 만나러 가지 않습니다. 위헌공이 이유를 묻자 공자 전이 대답합니다. “모든 권력을 신하에게 넘기는 것이 가능합니까? 복귀하시면 영희와의 약속을 후회하실 겁니다. 신은 영희와 어떤 맹약도 할 수 없습니다.” 위헌공이 다시 한번 확약하고 나서야 공자 전은 영희를 만나러 떠납니다.
영희가 손임보의 집안을 도륙 내고 독약을 먹여 군주를 죽입니다. 아비와 아들이 군주를 몰아낸 역신이 됩니다. 13년 만에 위헌공이 군위에 복귀하고 영희가 전권을 행사합니다. 위나라 대신들도 국가 중대사를 영희와 논하고 재가받습니다. 위헌공은 실권 없이 상징적으로만 존재합니다. 위헌공은 영희의 독단에 불만이 있으나 지난날의 약속이 있어 어쩌지 못합니다. 권력에서 소외된 대신들도 영희가 불만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영희가 국가 간의 중요한 행사를 독단으로 처리합니다. 위헌공이 뒤늦게 알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대신인 공손면여가 군주의 불만을 영희에게 전하지만, 영희는 지난날의 약속을 거론하며 무시합니다. 드디어 권력을 놓고 군신의 생각이 일치합니다. 공손면여가 영희를 치겠다는 뜻을 전하자 위헌공이 침묵합니다. 침묵을 승낙으로 받아들인 공손면여가 영희의 일족을 도륙 냅니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공유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한 영희는 일 년도 안 돼 독점했던 권력을 일족의 목숨과 함께 내놓습니다. 나누었다면 조금 부족했겠지만, 더 오래 누릴 수 있었다고 후회할 겨를도 없이 목과 몸이 분리됩니다.
선군(善君)을 몰아낸 악군(惡君), 권력을 탐한 신하의 살군(殺君), 권력을 놓고 벌인 신하들의 살육. 이대로 끝났다면 추악하기만 했을 이 사건의 마무리엔 나름대로 감동이 남아있습니다. 영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 전이 맨발로 달려와 주검이 되어 나뒹굴고 있는 영희의 시신을 쓰다듬으며 통곡합니다.
“임금께서 지난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그대를 속인 것이 되었구려. 이제 그대가 죽었으니 내 어찌 위나라의 녹을 받을 수 있겠소.”
집으로 돌아온 공자 전은 일가와 함께 진나라로 떠납니다. 위헌공이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만류했지만, 공자 전의 의지를 꺾지 못합니다. 진나라에 도착한 공자 전은 짚신을 삼아 생계를 유지하며 평생 위나라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합니다.
살며 단 한 번도 권력이란 걸 가져본 일이 없으니 그 달콤함이야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지만, 그걸 얻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누군가를 악용하고, 또 누군가의 등에 비수를 꽂아야 한다면 ‘지금의 권력 없음도 나쁘지 않지?’라고 자뻑하며 살겠습니다.
그런데 영희, 니가 여기서 왜 나와!, 엄청 반가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