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 옛사랑의 그림자
기원전 534년, 위영공이 위(衛)나라 군위에 오릅니다. 위영공의 부인은 송나라 여자로 이름이 남자입니다. 남자는 아름다웠으나 음탕한 여인입니다. 송나라에 있을 때부터 송나라 공자인 조와 깊은 관계를 맺었고, 출가 후에도 공자 조를 그리워합니다. 위영공과 남자 사이에 괴외가 태어나 세자가 됩니다.
위영공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자하라는 미모의 남자입니다. 위영공의 사랑을 오로지한 미자하가 방종합니다. 어머니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군주의 수레를 몰아 사가에 다녀옵니다. 국법에 의하면 발을 자르는 형벌에 처해야 합니다. 위영공이 연인을 칭송합니다. “형벌의 공포를 극복했으니 미자하는 효자다.”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맛있다며 위영공에게 줍니다. 위영공이 연인을 칭송합니다. “자신의 미각을 억제하고 맛있는 복숭아를 과인에게 주었으니 미자하는 충신이다.” 모든 신하들이 속으로 그들의 군주를 비웃습니다.
미자하에게 빠져 있던 진영공이 홀로 외로운 밤을 보내고 있을 부인을 위해 아내의 남자인 송나라 공자 조를 불러옵니다. 매일 밤 진영공은 미자하와 부인은 공자 조와 함께 합니다. 세자 괴외가 어미의 부도덕을 증오합니다. 괴외가 어미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송나라로 달아납니다.
위영공을 관용의 군주로 만들었던 미자하의 미모도 세월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인생의 정점을 넘어 수려했던 외모가 빛을 잃자 사랑도 잃습니다. 이제 미자하는 자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옛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여전히 방종합니다. 추억으로 존재하는 옛사랑의 흔적은 더 이상 보호막이 되지 못합니다. 미자하가 작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미자하의 연인이 말합니다. “저놈은 감히 어가를 훔쳐 타고,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놈이다. 내쳐라!”
춘추시대 후반기에 노나라는 맹손, 숙손, 계손씨의 삼환이 권력을 장악해 군주의 권한을 넘게 됩니다. 기원전 517년, 노소공이 계손의 세력을 몰아내려고 저택을 공격하자 숙손과 맹손이 순망치한을 생각해 노소공을 공격합니다. 노소공이 달아나 망명지에서 객사하고 동생 송이 군위에 올라 노정공이 됩니다. 전권을 휘두르던 삼환에게도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납니다. 삼환으로부터 녹을 받던 가신이 성장해 삼환조차도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군주보다 강한 삼환과 삼환보다 강한 가신이 각각 세력을 형성해 반목하자 노나라 군주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혼란은 더욱 심해집니다.
노나라 대부 숙량흘은 60이 넘은 나이에 10대인 안씨를 얻어 대를 이을 아이를 낳습니다. 기원전 551년, 공자가 태어납니다. 공자 나이 세 살에 아버지가 죽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공자는 15세가 되면서 학문에 뜻을 두고, 19세에 혼인하여 아들 리를 낳습니다. 결혼하던 해에 말단 관리로 공직생활을 시작합니다. 30세에는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스승으로 이름을 알립니다. 35세 때 삼환에게 쫓겨 달아나는 노소공을 따라 제나라로 갑니다. 노나라에 비해 안정되고 물자가 풍부한 제나라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 했으나 등용되지 못하자 노나라로 돌아와 오직 학문에만 정진합니다.
기원전 501년, 공자 나이 51세에 노나라 중도의 재로 임명됩니다.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중도는 잘 다스려졌고 모든 고을의 모범이 됩니다. 공자가 중도에 있을 때 많은 나라의 관리들이 공자를 방문해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노나라에서 자신의 정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공자는 현실 정치와의 사이에서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정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나라를 찾아 제자인 자로, 자유와 함께 길을 떠납니다. 12년 동안 위, 제, 송, 정, 진, 채, 초를 주유하는 철환천하(轍環天下)를 시작합니다.
공자가 처음 방문한 나라는 위영공의 위나라입니다. 막장의 위나라에서 공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송나라로 갔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송경공의 남자 환퇴라는 자가 공자를 죽이려 합니다. 공자로 인해 송나라가 덕화되면 자신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다시 길을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지만, 공자를 등용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모든 나라 군주는 빠른 부국강병책을 원합니다. 당대에도 공자가 주장하는 ‘군자의 도’는 현실성이 없어 보였나 봅니다. 기원전 484년, 제후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옵니다. 이때부터 공자는 고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 활동에 전념합니다.
기원전 479년, 자신의 정치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끝없이 노력했던 공자가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칩니다. 누군가 공자를 가리켜 ‘가망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하려는 사람’이라 비아냥거린 일이 있습니다. 공자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겠지만, 그 길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실패할 줄 알면서도 일생을 들어 정진했겠지요. 그의 정치이상이 실현된 ‘공자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정치가 연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외신이 전할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네요. 수천 년을 거슬러 ‘군자의 도’가 필요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