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어 산 목숨

역사 이야기

by 오세일

- 가도멸괵, 순망치한


춘추시대 강력한 패권국이었던 진(晉)나라는 주나라 2대 주성왕이 동복동생 숙우를 당(唐)에 봉하면서 시작됩니다. 작위는 후작입니다. 기원전 746년 숙우로부터 12대인 진소후 원년에 자신의 숙부인 성사를 곡옥에 봉하면서 나라가 둘로 나뉩니다. 이로부터 67년이 지나 방계인 곡옥의 진무공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 피를 부르는 싸움이 계속됩니다.


기원전 677년, 군위 39년에 진무공이 죽고 아들 궤제가 군위를 이어 진헌공이 됩니다. 진헌공은 제환공의 재위기간과 겹쳐 당대에 패권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다음 세대에 초나라와 양강 체제로 발돋움할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합니다. 통일된 진을 물려받은 진헌공은 손에 피를 묻히고 군위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즉위 후 선대 군주의 후손들을 죽임으로써 군위의 안정을 확고히 합니다. 대외적으로도 활발한 정복사업을 벌여 전반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진나라 주변에 우(虞)나라와 괵(虢)나라가 있습니다. 괵공은 호전적인 인물이어서 진나라 변경을 자주 침략합니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나라지만 우와 괵이 서로 협력하여 대항하는 바람에 골칫거리가 됩니다. 진헌공 19년, 괵이 진의 변경을 침략하자 진의 대부 순식이 괵과 우를 한 번에 없앨 계책을 세웁니다. 먼저 미인을 뽑아 괵공에게 보내며 화평을 청합니다. 괵공은 미인에 빠져 춤과 노래를 즐기며 정사를 소홀히 합니다. 괵의 대부 주지교가 진의 음모를 간파하고는 괵공에게 진의 여자를 멀리하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나 괵공은 이를 귀찮게 여겨 변방으로 쫓아 버립니다. 괵의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순식은 견융에게 뇌물을 주고 괵나라를 침략하게 합니다. 견융과 괵은 서로 대치합니다.


첫 단추가 끼워지자 순식은 다음 단계를 진행합니다. 우공에게 길을 빌리기 위해 뇌물이 필요합니다. 마침 진헌공에게 좋은 옥과 말이 있습니다. 순식은 두 보물을 우공에게 보내 괵나라 칠 길을 빌리자고 진헌공에게 제안합니다. 보물에 대한 집착이 진헌공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순식이 말합니다. “우공에게 길을 빌려 괵을 멸하면 우의 멸망은 시간문제입니다. 우가 망하면 그 보물은 다시 임금께로 돌아오니 이는 우공에게 잠시 맡겨놓는 것과 같습니다.” 진헌공이 허락합니다.


순식이 우공을 만나 길을 열어달라 요청합니다. 괵을 치려는 속셈을 알고 있는 우공이 진노하나 순식이 보물을 바치자 기뻐하며 허락합니다. 이때 우나라 대부 궁지기가 우공에게 간합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립니다. 괵이 없으면 우도 없습니다. 진이 우리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우와 괵이 서로 돕기 때문입니다. 이제 길을 빌려줘 괵이 망하면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됩니다.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보물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나 옥을 쓰다듬는 우공의 귀에 들릴 리 없습니다. “진이 보물을 아끼지 않는데 어찌 길을 아끼겠는가. 괵이 망하더라도 진과 친하면 되니 더 이상 말하지 말라!” 궁지기는 망국을 예견하고 우나라를 떠납니다.

길을 빌린 진나라가 괵을 공격합니다. 우공도 군대를 보내 돕습니다. 우가 도우러 왔다고 믿은 괵은 우의 배신으로 쉽게 무너집니다. 결국 괵공은 야반도주하고 괵은 망합니다. 괵을 접수한 진나라는 우마저도 접수하고 우공을 사로잡습니다. 보물은 우공의 품을 떠나 진나라로 돌아옵니다.


우공의 어리석음이 나라를 잃게 하지만, 대신 목숨을 구합니다. 진헌공이 우공을 죽이려 하자 순식이 말립니다. “우공은 어리석은 자이므로 살려둔들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차라리 그를 살려 세상인심이나 얻는 게 낫습니다.” 진헌공이 우공을 살려주고 보물도 우공에게 돌려줍니다.


다양한 망국의 변이 있겠지만, 한낱 보옥과 사직을 맞바꾼 우공의 경우엔 어떤 변명이 있을 수 있을까요? 경국지색, 미색이 나라를 기울게 하는지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듯 우공에겐 보옥 또한 통제되지 않는 가치일지는 모르겠지만 주지육림으로 나라를 망친 수많은 군주를 제치고 대표 우(愚)공의 타이틀을 우(虞)공이 차지해 어리석은 군주의 보통명사가 됩니다.


가도멸괵(假道滅虢)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고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남 이야기는 아닐 듯합니다. 적어도 우리 손으로 우(愚)공을 뽑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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