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기원전 514년, 오왕 요를 암살하고 왕위에 오른 오왕 합려는 재위 10년에 군사를 크게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합니다. 의지의 중국인 오자서, 손자병법의 저자로 전해지는 손무가 초나라 도성을 함락시키고 오나라의 승리를 이끕니다. 오왕 합려는 춘추 네 번째 패자가 됩니다. 초와의 전쟁 중에 오왕의 동생인 부개가 반란을 일으켜 월왕 윤상을 끌어들이지만 오왕에게 진압됩니다.
월왕 윤상이 죽고 아들 구천이 왕위를 잇습니다. 오왕 합려는 부개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월왕이 부개를 도왔던 죄를 물으려 합니다. 기원전 496년, 오가 월을 치기 위해 출정하자 월왕 구천도 대응합니다. 강한 오를 이기기 위해 월왕은 전대미문의 전략을 구사합니다. 죄수 300명을 오나라 진영 앞으로 보내 차례로 자살하게 합니다. 엽기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오군은 질려버렸고, 이틈을 노려 월군이 급습합니다. 오군은 대패했고 오왕도 부상을 당합니다.
철군 도중 죽음을 예감한 오왕은 아들 부차를 불러 월에 대한 복수를 유언으로 남깁니다. 부차가 왕위에 오릅니다. 오왕 부차는 땔나무로 만든 거친 잠자리에 누워 자면서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결기를 다집니다.
선왕의 삼년상을 마친 오왕이 월을 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합니다. 월왕이 오와 맞서나 3년을 착실하게 준비한 오가 압승을 거둡니다. 오왕이 월을 없애려 하자 월은 뇌물을 씁니다. 월왕 부부가 오왕의 종이 된다는 조건으로 월의 존속을 허락합니다. 월왕이 병든 오왕의 변을 핥으면서까지 정성을 다하자 오왕의 분노가 풀렸고 월왕은 3년 만에 복귀합니다.
복귀한 월왕은 치욕을 갚기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선정을 베풀고 출산을 장려하고 7년 동안 세금을 걷지 않습니다. 허름한 의복에 험한 음식을 먹으며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합니다. 매일 곰의 쓸개를 핥으며 오나라에 대한 복수의 결기를 다집니다.
월이 오에 대한 복수를 착실하게 준비할 때 오왕은 자만합니다. 토목공사를 벌여 대규모의 궁궐을 짓습니다. 월왕이 좋은 목재를 보내자 오왕은 월왕의 충성심에 감동하고, 월왕은 오왕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 기뻐합니다. 월왕이 유명한 경국지색인 서시를 오왕에게 보냅니다. 오왕은 월왕의 충성심에 감동하고, 월왕은 오왕이 입을 서시의 화를 예견하며 기뻐합니다. 오왕은 서시와 함께 즐기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입니다. 오의 재정은 고갈되고 백성들은 고통당합니다.
기원전 482년, 모든 준비를 마친 월왕은 12년 전 오왕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출정합니다. 월에 대한 방비가 되지 않은 오는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오왕이 화평을 청합니다. 완전히 멸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한 월왕이 화평을 받아들입니다. 패망의 위기에서 벗어난 오왕은 15년 전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습니다.
기원전 476년,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 월이 오의 도성을 넘습니다. 오왕이 월왕에게 내렸던 벌을 받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월왕은 100호의 식읍을 줄 테니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라고 합니다. 절망에 빠진 부차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습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두 주인공인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거친 잠자리에 누워 자고(臥薪), 곰의 쓸개를 핥으며(嘗膽) 서로에 대한 복수의 결기를 다졌던 두 사람,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월이 되고 월왕 구천은 춘추 다섯 번째 패자가 됩니다. 궁전 뜰에 신하를 세워 놓고 자신이 지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해 혹시라도 복수에 대한 집념이 무뎌질까 경계했던 오왕도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각고했던 월왕에겐 미치지 못합니다.
오월이 중국의 동남쪽에서 와신상담하던 동시대에 유럽 동남쪽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왕이 있습니다. 1, 2차 페르시아 전쟁의 주인공인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도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에 당한 패배를 잊지 않기 위해 하인들을 시켜 “왕이시여! 아테네에 당한 패배를 잊지 마소서!”라고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다리우스왕은 당대에 설욕의 기회를 갖지 못하지만 아들인 크세르크세스왕이 벌인 전쟁을 저승에서 지켜봅니다. 그러나 3차 폐르시아 전쟁은 테르모필라이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세계 전쟁사에 남겨놓고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끝맺습니다.
기원후 2022년, 대한민국에도 72년 전 한국전쟁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입하며 와신상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중 한 분은 대한민국의 유력 대통령 후보입니다. 경제적 의미의 공산주의 국가가 존재하나요? 제도의 차이는 있어도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멸공의 대상이 될 공산주의라는 실체가 모호해졌습니다. 중국이 독특한 정치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제도를 세계에 전파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군사적 이유든 경제적 이유든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배척할 수 없다는 건 저 같은 우민도 알고 있지요. 멸공이란 낡은 개념을 이슈화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유력 대선후보의 지나친 가벼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