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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Aug 11. 2024

국모라 불린 두 여인

역사 이야기

세월이 흘러 국모의 개념은 사라졌습니다. 법령상 용어는 아니지만 ‘영부인(領夫人)’이란 호칭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을 일컫는 말로 당연히 국어사전에 있는 한자어인 줄 알았는데 어느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있지 않다고 하네요. 대신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영부인(令夫人)이란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참에 대통령 부인을 공식적으로 영부인(領夫人)이라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면 호칭에 걸맞게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제를 죽이고 당나라 2대 황제가 되는 당태종 이세민, 비록 손에 피를 묻히고 오른 제위였지만 모든 정치의 모범이 된다는 정관의 치를 이룬 배경에는 이세민 부인의 역할도 있었습니다. 601년에 태어나 613년에 두 살 위의 이세민과 결혼한 문덕황후는 지혜로운 국모로서 많은 미담을 전하고 있습니다. 태자의 유모가 황궁에 물건이 부족하다고 걱정하자 검소했던 황후가 말합니다. “태자가 걱정해야 할 것은 ‘덕을 갖추지 못함’과 ‘명예를 가지지 못함’이다. 왜 물건 부족을 걱정하는가?” 황제가 황후의 오라비를 승상에 임명하려 하자 황후는 한나라 여태후의 사례를 들며 외척의 등용을 반대합니다. 한나라 건국군주였던 유방의 처 여태후는 유방이 죽은 후 여씨를 등용해 나라의 권력을 오로지 하지만 여태후가 죽고 여씨 일족이 도살당했던 옛일을 기억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외척의 등용을 반대한 것입니다.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은 드문 예입니다.     


문덕황후와 함께 중국 역사상 최고의 국모로 평가하는 명나라 건국군주 주원장의 부인 마황후가 있습니다. 금수저 출신인 이세민 부부와 달리 주원장 부부는 흑수저 출신입니다. 마황후는 생계유지를 위해 탁발승 행세까지 해야 했던 홍건적 주원장과 결혼해 주원장이 중국을 통일하고 명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명나라 건국 후 주원장의 정치는 명암이 존재하지만, 개국공신을 포함해 10만 명이 넘는 신하들을 가혹한 형벌로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실시합니다. 마황후는 신하들의 억울한 죽음을 구원하기 위해 주원장을 설득하려고 노력합니다.     


미천한 출신이었던 마황후는 전족을 하지 않아 발이 컸고 당대의 관점에서 큰 발은 놀림의 대상이었습니다. 한번은 황후의 큰 발을 비웃은 것과 연루돼 많은 백성이 붙잡혀 죽음을 앞두고 있자 황후는 발이 큰 건 사실이니 백성들을 처형하지 말라며 주원장을 설득합니다. 황후가 병이 들어 죽음을 앞두고 어의가 탕약을 올립니다. 탕약을 복용하고 죽으면 어의도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에 황후는 어의의 목숨을 걱정해 탕약을 거부하고 황제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어의를 벌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1382년의 일입니다.


세월이 흘러 국모의 개념은 사라졌습니다. 법령상 용어는 아니지만 ‘영부인(領夫人)’이란 호칭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을 일컫는 말로 당연히 국어사전에 있는 한자어인 줄 알았는데 어느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있지 않다고 하네요. 대신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영부인(令夫人)이란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참에 대통령 부인을 공식적으로 영부인(領夫人)이라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면 호칭에 걸맞게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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