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조기 은퇴를 꿈꾸며 시기를 달리해 벤처회사 두 곳에 다닌 일이 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성공 자축연을 열고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외쳤건만 김칫국이 되어버렸고, 조기 은퇴는 고사하고 이 나이에도 여전히 돈 벌어야 할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네요.
10여 년 전, 한 벤처회사에 다닐 때 처음으로 순댓국이란 음식을 마주했습니다. 처음 보는 정체불명의 고기들과 물컹한 식감이 거슬려 약간의 국물과 깍두기로 할당된 소주를 비운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사장님이 순댓국을 좋아해 이후에도 종종 순댓국집 방문이 이어졌고, 횟수가 반복되면서 순댓국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먹어본 세상 어떤 안주보다 소주를 가장 맛있게 만든다는 걸.
여전히 식사로는 순댓국을 먹지 않지만, 그 이후 혼술할 때면 유일하게 찾는 곳이 순댓국집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술 있는 저녁’이 인생 모토이니 혼술할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가끔 술자리 없는 날 집사람마저 퇴근이 늦어지면 고민 없이 설래임까지 더한 발걸음으로 순댓국집을 찾습니다. 안주로서의 역할은 소주 한 병 비울 때까지입니다.
산본에선 주로 전주식당을 이용했었는데 최근 순댓국집이 많이 늘었습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내린 결론, 일대에서 순댓국 최고 맛집은 옛 로드 넘버원에 있는 장터순대국이라는 것. 더하여 사장님이 제 소주 취향까지 기억해주는 평생 유일한 단골집이기도 합니다.
요즘 제 주변에 점심이든 저녁이든 가리지 않고 순댓국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는 순댓국 예찬론자가 있습니다. 심지어 술은 끊어 마시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면서도 엄청 큰 목소리로 하루에도 수 차례 순댓국을 연호하네요. 점심에 술 없이 먹는 순댓국은 어떤 맛일지 궁금해집니다. 언제 기회 되면 장터순대국에 한번 같이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