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세상 노잼이라는 군대 이야기입니다. 독립된 대대에서 근무하며 2명의 대대장을 겪었습니다. 전임 대대장은 육사출신 중령이었고 후임 대대장은 삼사출신으로 막 중령 진급하면서 부임했습니다. 편의상 전임은 ‘A’, 후임은 ‘B’라 하겠습니다. 당시 육사출신은 중령까지, 3사출신은 대위까지가 자동진급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출신에 따라 차별이 심할 때였습니다. A가 진급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당장 대령 진급할 군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막 진급한 B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복무 중 저격수로 뽑혀간 사격장에서 대령 진급을 위해 모질게 굴었던 육사출신 중령과 비교하면 두 사람 다 무난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대 운영방식 때문입니다. 먼저 전임자였던 A가 대대장이었던 시기에는 권한을 위임받은 4명의 중대장이 각각 업무를 분담해 대대를 운영했습니다. 대대장은 중대장 4명을 동등하게 대했으며 중대장들을 통해서만 대대를 운영했습니다. 저 같은 일반 사병은 대대장과 직접 마주칠 일도 드물었지요.
반면 B는 업무 대부분에 직접 관여했습니다. 호오를 떠나 우리는 B를 중대장 같은 대대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소령 진급에 목맨 한 중대장이 전담해 대대장을 수행했고, 그런 상황이 일정 기간 지속되자 나머지 3명의 중대장은 업무의 중심에서 밀려나 서서히 방관자가 되어 갔습니다. 결국 대대 운영은 대대장과 중대장 한 명이 도맡아 하게 되었지요.
어떤 유형이 더 효율적이었을까요? 대대 운영이라는 게 ATT(전술훈련)에서의 성과, 먹고 입고 자는 것, 화기 관리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두 시스템 모두 천 명도 되지 않은 대대를 운영하기에 충분했고, 선입견을 배제한다면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우열을 가늠하기에 모호함이 있습니다. 80년대 중후반의 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A의 시기엔 좀 더 ‘자율’이, B의 시기엔 ‘지시와 통제’가 운영의 기저였습니다.
이천이백여 년 전, 중국 전국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한비의 한비자, 천오백 년 대 초반 도시국가로 분열돼 외세에 시달려야 했던 이탈리아(피렌체 공화국)를 배경으로 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습니다. 국가 간의 반목이 심했던 혼란기를 산 두 사람은 철저히 군주의 입장에서 현실주의적 부국강병론을 펼칩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며 이를 통제하기 위해 법과 시스템을 강조합니다. 한비로부터 이백여 년을 거슬러 오르면 군신 간의 반목으로 혼란스러웠던 춘추시대 말기의 공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근본이 선하므로 교육을 통해 도덕적으로 교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공자의 인간관은 상대적으로 따뜻합니다.
현대의 인간은 복합적입니다.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이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공공의 안녕에도 무심하지 않습니다. 대다수는 많은 지적정보에 근거해 이성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편향된 판단에 매몰된 소수가 있습니다. 큰 목소리를 가진 이들 소수가 항상 문제의 진원지가 됩니다. 맹목적 확신이 갈등을 만들고 확대 재생산합니다. 광화문에도 있고 정치팬덤에도 있습니다.
구성원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는 명령과 통제가 아니라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구성원과 목표를 공유하며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기에 구성원 스스로 목표 달성 과정에 기여하게 만듭니다. 인내, 존중, 무욕, 용서, 헌신 등이 서번트 리더십의 특징이 되는 단어들입니다. 이 절박한 시기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그렇더라도 새 대통령과 새 정부에 지역과 세대 간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큰 정치를 바라봅니다. 물론, 피아 구분 없이 치죄는 공정하고 명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