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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사람 이야기

by 오세일

짧지만 지난했던

인생의 한 장면이 지나감

기념해 지리산 다녀옴


금요일 밤 늦게 버스로 이동

새벽 3시 백무동 도착

장터목, 천왕봉 거쳐 대원사로 하산하는 일정

18시 30분에 픽업 버스 도착하니

무려 15시간 30분을 산에 있어야 함

산길 이리 여유롭긴 처음


3시 20분 백무동 출발

기관지 내시경 후유증으로

몸살 중이었고

산에서 못 마시게 하는 막걸리

미리 마신다고 저녁 반주한 게

탈이 난 걸까?

장터목까지 5.8km가 이리 힘겨움

5시 50분 장터목 도착


바로 중산리로 하산할까 고민하다

그래도 천왕봉은 봐야 할 것 같아

김밥 한 줄 먹고 7시 출발

제석봉에 이르러 몸 상태 회복됨

중간중간 카메라 꺼내 촬영

날씨가 청명한 것도

구름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특색 없는 밋밋함


8시 천왕봉 도착

당일 화대종주는 과거 신의 영역이었음

그걸 해내는 사람이 있다고

처음 들었을 때 믿지 못했음

작년 성중종주 후

화대종주가 머리를 맴돌음

시작하면 기어서라도 도착이야 하겠지만,

후유증을 감당할 자신이 없음


지리산 주능선 중 유일한 미답지인

대원사 향해 11.7km 시작함

천왕봉에서 중산리 코스에 비해

풍광이 뛰어남

고사목과 어우러진 중봉도 좋고

중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도 멋짐

써리봉도 좋았고

한눈에 들어오는 천왕봉과 중봉이 이색적임

써리봉까지 2.2km는 모든 게 좋았음

이후 눈에 뵈는 게 없이

고행 같은 9.5km 하산길

남는 게 시간이라 바위에 누워

남은 김밥 한 줄 먹으니

막걸리가 이리 아쉬움


터벅터벅 투덜투덜

13시 30분쯤 유평마을 식당가 도착

막걸리 한잔하려고 휴대폰 찾으니

헐 없음, 다 뒤져도 정말 없음,

영혼까지 털어도 진짜 없음

마지막 통화한 곳까지

다시 2km 등산, 역시나 없음

다행히 등산객 도움으로 전화하니

식당가 근처 카페에 있다고


처음부터 휴대폰 빌려 전화했으면

4km 안 걸어도 됐는데

부탁하기 싫다고 산길 선택하니

인생이 고될밖에


카페에 도착하니

한 노인분이 어찌 알고 다가와

휴대폰 건넴

사례하고 싶다 하니

돕고 사는 거라며 웃으며 돌아섬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움


유평마을에서 등산 종착지인 대원사까지 1.5km

대원사에서 주차장까지 2.1km는 찻길임

산행 끝에 찻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고역임, 아니 고문임

유평마을에서 주차장까지 3.6km

3~5천 원 받고 공유자전거 운영하면 돈 될 듯


주차장 도착해 산채비빔밥에 막걸리 마심

순간 신선이 됨

커리어 화대종주라 자찬하며

지독히 여유로웠던 등산이 끝남

이렇게 지리산과 함께

내 삶의 한 장면도 마무리됨

또 어떤 삶이 다가올지 기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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