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우리가 ‘위’로 발음하는 위나라는 중국 역사상 여러 차례 존재합니다. 춘추시대 초강대국이었던 진(晉)나라가 삼분돼 전국시대에 존재했던 위(魏)나라, 삼국시대 조조가 세운 위(魏)나라, 북위라 불러 구분하는 남북조시대 선비족이 세운 위(魏)나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염위, 이위, 동위 등 많은 위나라가 명멸합니다. 이 이야기는 춘추시대 약소국이었던 위(衛)나라를 배경으로 합니다.
기원전 534년, 위나라 군위에 오른 위영공의 부인은 송나라 여자로 이름이 남자입니다.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으나 음탕했던 그녀는 송나라 공자인 조와 깊은 관계를 맺었고 출가 후에도 공자 조를 잊지 못합니다. 위영공과 남자 사이에 괴외가 태어나고 세자가 됩니다.
당대에 남색 풍습이 있었습니다. 위영공은 미자하라는 미모의 남자를 사랑합니다. 위영공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남자아이가 방종합니다. 미자하는 모친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임금의 수레를 몰아 사가에 다녀옵니다. 국법에 따라 발을 자르는 형벌을 집행해야 합니다. 위영공이 연인을 칭송합니다. “깊은 효심이 형벌의 공포를 극복했으니 미자하는 효자다.”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맛있다며 위영공에게 준 일이 있습니다. 위영공이 연인을 칭송합니다. “자신의 미각을 억제하고 맛있는 복숭아를 과인에게 주었으니 미자하는 충신이다.” 모든 신하가 그들의 군주를 비웃습니다.
위영공을 관용의 군주로 만들었던 미자하의 미모도 세월이 흘러 빛이 바랩니다. 미모를 잃고 사랑도 잃습니다. 이제 그는 자중해야 했지만, 옛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방종합니다. 그가 기억했던 건 이미 소멸해 버린 과거의 사랑이었고 현실은 시효 지난 옛사랑의 흔적뿐입니다. 미자하가 작은 잘못을 저지르자 미자하의 연인이 격노합니다. “저놈은 감히 어가를 훔쳐 타고,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놈이다!”
위영공이 미자하에 빠져 있을 때 홀로 외로운 밤을 보내고 있을 부인 남자를 위해 아내의 남자인 조를 불러옵니다. 진영공은 미자하와, 부인은 조와 함께합니다. 세자인 괴외가 어미의 부도덕을 증오해 어미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송나라로 달아납니다. 괴외의 아들 첩이 세자가 됩니다.
기원전 493년, 위영공이 죽고 첩이 군위에 올라 위출공이 됩니다. 위출공 8년에 공자가 위나라를 방문했다 이듬해 노나라로 돌아갑니다. 위출공 12년, 위나라에 반란이 일어나 위출공은 도망가고 괴외가 즉위해 군주가 됩니다. 이 난리 속에 위나라에서 벼슬 살던 공자의 제자 자로가 괴외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자로 외에도 자고라는 제자가 위나라에서 형벌을 담당하는 관직을 맡고 있습니다. 자고가 한 죄인에게 발을 자르는 형벌을 내린 일이 있습니다. 발이 잘린 죄인은 이후에 마음을 고쳐먹고 간수가 됩니다. 괴외의 난이 일어나자 자고는 도망가려 했으나 이미 성문이 닫힌 뒤라 붙잡힐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발목 잘린 간수가 자고를 숨겨 목숨을 구해줍니다.
자고가 묻습니다. “내가 너의 발을 자르는 형벌을 내렸으니 복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어찌하여 나를 살려주는가?” 간수가 답합니다. “내가 발이 잘린 것은 내 죄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은 법령을 세밀히 조사하며 나를 구제하려 노력했습니다. 형벌을 확정할 때 당신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이는 나에 대한 인정 때문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인애(仁愛)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호의에 보답할 수 있기를 바라왔습니다.”
후에 이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한 말이랍니다. “관리가 임무에 충실하면 덕을 쌓고 은혜를 베풀지만, 임무에 충실하지 않으면 원한을 맺게 된다. 관리란 법도를 공평하게 집행해야 한다.”
법이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어떤 판결을 내든 국민이 동의할 수 있습니다. 대상에 따라 다른 잣대로 죄를 재단하고 치죄한다면 쌓이고 쌓인 원한이 결국 비수가 되어 돌아오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