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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웃나라는 없다!

역사 이야기

by 오세일

기원전 13C,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지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찾아 탈출합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가 됩니다. 탈이집트(출애굽) 이후 40년 동안의 방황를 끝내고자 여호수아가 이끄는 히브리인은 팔레스타인(가나안)을 침략합니다. 예리코(여리고성)의 전투에서 승리한 히브리인들은 성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합니다.

기원전 10C, 사울이 최초의 히브리인의 나라 이스라엘 왕국을 건국합니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어려서부터 수없이 듣던 다윗과 솔로몬의 나라입니다. 기원전 931년, 유다왕국의 분리독립으로 왕국은 분열되고 북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0년, 유다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각각 신앗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합니다.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바빌론에 억류돼(바빌론 유수) 노예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냅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재해석하면, 이국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유대인을 이란이 구원해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 준 사건입니다. 이란의 옛 이름이 페르시아입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그리스와 2차례 전쟁을 벌이고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 멸망 당합니다.

알렉산더 사후, 헬레니즘 국가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은 기원전 142년, 마지막 독립왕조인 하스몬 왕조를 건국합니다. 기원전 63년, 하스몬 왕조가 공화국 로마에 복속됩니다. 로마군은 1만 2천명의 유대인을 학살합니다. 이후 2000년 동안 이스라엘은 독립된 나라를 갖지 못합니다.

614년, 로마의 영역이었던 예루살렘의 유대인은 기독교도의 탄압에서 벗어나고자 예루살렘을 공략하는 사산조 페르시아를 돕습니다. 예루살렘의 주인이 페르시아로 바뀝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유적을 철저히 파괴하고 9만 명의 기독교인을 살해합니다. 629년, 동로마제국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페르시아에 협력했던 유대인을 보복 학살합니다.

632년, 신흥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죽고 혼란기를 넘긴 이슬람 세력은 동로마제국을 압도합니다. 638년, 예루살렘은 614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슬람 세력에 항복합니다.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한 2대 칼리파 우마르는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방식으로 신을 숭배하라.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신을 숭배할 것이다. 지금부터 무슬림이 너희와 함께 살아가며 모범을 보일 것이니, 마음에 든다면 우리에게 합류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도 괜찮다.”

661년, 무아위야 1세가 첫 이슬람 세습왕조인 우마이야 왕조를 창업합니다. 무아위야 1세는 예루살렘의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배려합니다. 아프리카 북부를 이슬람화한 우마이야 왕조는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고 있던 서고트 왕국을 공략합니다. 722년, 서고트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우마이야 왕조에 내주고 반도 북서쪽에서 명맥을 유지합니다. 이때부터 기독교 국가 입장에서 국토수복운동이라 해석하는 레콩키스타가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떠나는 1492년까지 진행됩니다.

북아프리카가 이슬람화된 7세기 후반부터 사라센 해적들이 지중해 너머 유럽을 상대로 약탈을 시작합니다. 사라센 해적은 해안 마을을 습격해 기독교인을 포로로 잡아 노예로 팝니다. 유럽 지중해 연안에 남아 있는 사라센의 탑은 사라센 해적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구책이었습니다. 사라센 해적의 폐해는 유럽국가가 북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드는 19세기까지 이어집니다.

11C 초, 이란에서 창업한 셀주크제국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튀르크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셀주크제국은 서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차지합니다. 1071년, 셀주크제국은 소아시아라고도 부르는 아나톨리아반도의 동쪽 끝 만지케르트에서 제국의 확대를 견제하려는 로마노스 4세의 동로마제국과 마주합니다.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승리한 셀주크제국은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1077년에는 예루살렘의 주인이 됩니다.


1077년,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반목합니다. 교황이 황제를 파면한 카노사의 굴욕은 교황권의 정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억되지만, 이후 교황은 굴욕 준 대가를 톡톡히 치릅니다. 1084년 황제가 로마를 점령하고 교황은 이탈리아 남부로 피난 가 이듬해 그곳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1088년, 159대 교황으로 선출된 사십 대 중반의 우르바노 2세는 셀주크제국이 점령한 예루살렘을 이용해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고 교황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신이 바라신다(데우스 불트, Deus Vult)!”

1096년, 1차 십자군은 레반트 지역(지금의 시리아와 레바논 등)을 차례로 점령하며 1099년에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포함해 4개의 십자군 국가를 건설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은 수만 명의 이슬람교도와 유대교인을 학살합니다. 명분은 ‘신의 심판’이었습니다. 한 세기 가까이 존립한 예루살렘 왕국은 1187년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을 넘깁니다. 이 과정을 각색한 영화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Kingdom of Heaven’입니다.

이슬람 세계의 패권이 맘루크 왕조를 거쳐 1299년 창업한 오스만제국으로 넘어갑니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7대 술탄 메흐메트 2세가 2200년 동안 유지되어 온 로마제국의 마지막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킵니다. 1517년,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킨 오스만제국이 예루살렘의 새로운 지배자가 됩니다.

1870년,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프로이센과의 보불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프랑스에서는 극단적이고 폐쇄적 애국심을 강요하는 쇼비니즘이 만연합니다. 보불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했습니다. 1894년, 반유대주의가 배경이 되는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납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자는 시오니즘이 이 사건을 겪으며 구체화됩니다. 19C 말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유대인들의 이주가 시작됩니다. 1648년, 이차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를 방관했다는 서유럽국가의 부채의식과 살아남은 유대인의 적극적 참여로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의 마지막 독립국가였던 하스몬 왕조가 로마에 병합된 이후 2000년 세월이 지나 유대인의 독립국가가 출범합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선언 다음 날 아랍 5개국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납니다. 팔레스타인 비극의 시작입니다.

3천 년 넘게 이어 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그리고 이슬람 세계. 좋은 이웃은 있어도 좋은 이웃 나라는 없나 봅니다. 나라가 없어 겪어야 했던 홀로코스트, 극단적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고 국가 존속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전투적 국가로 재탄생한 이스라엘, 생존권과 종교 문제까지 더해져 힘에 의한 논리 외에 해법이 보이지 않네요. 전쟁의 처참함, 최악의 리더는 국민에게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는 리더이겠지요. 우크라이나의 비극에서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동족상잔이라는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국민이 똑똑해져야 합니다.


⁕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신학의 영역과 역사의 영역이 혼재돼 있습니다. 여전히 헤브라이즘은 헬레니즘과 함께 서구문명사의 뿌리가 되고 있지만,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학자들에 의해 역사로서의 구약성경은 부정되거나 축소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독립의 기원으로 보는 출애굽을 역사학자는 고고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신화적 서사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실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소규모로 진행됐거나, 아니면 점진적으로 진행된 인구이동이었다고 추정합니다. 구약시대의 이야기인 출애굽과 여리고성 전투는 성서를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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