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590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27대 샤한샤(왕중왕) 호스로 2세는 부친인 호르미즈드 4세를 몰아낸 세력에 의해 추대돼 제위에 오릅니다. 호스로 2세는 반란세력에 의해 시력을 잃은 부친을 처형합니다. 그러나 선왕 때부터 반란을 이어온 페르시아의 장군 바흐람 추빈에게 쫓겨나 동로마제국의 영역인 시리아로 망명합니다. 바흐람 추빈이 제위에 오릅니다. 591년, 호스로 2세는 동로마제국 동쪽의 페르시아 영토를 넘기는 조건으로 동로마제국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도움을 받아 바흐람 추빈을 몰아내고 복위에 성공합니다. 호스로 2세는 자객을 보내 제국의 동쪽 튀르크로 망명한 바흐람 추빈을 살해합니다.
마우리키우스 황제는 군사적 성공을 바탕으로 동로마제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한 명군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전황제의 낭비와 잦은 전쟁으로 인한 재정 고갈은 긴축재정으로 이어졌고 이에 불만을 품은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100명의 군인을 지휘하는 백인대장 출신의 포카스를 황제로 옹립합니다. 반란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하자 시민들이 호응했고, 반란군은 페르시아 망명을 위해 아나톨리아반도를 지나던 황제 일행을 붙잡아 처형합니다. 602년, 포카스가 제위에 오릅니다. 권력을 잡은 포카스 황제는 재위 8년 동안 공포정치로 일관합니다.
603년, 호스로 2세가 동로마제국에 선전포고합니다. 마우리키우스의 복수를 명분으로 영토확장에 나선 것입니다. 시리아와 아나톨리아로 진격한 페르시아는 613년에 시리아를 정복했으며 이듬해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수가 못 박혀 죽었다는 성십자가를 탈취합니다. 617년, 동로마제국의 심장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근까지 진격하고 618년에는 이집트를 점령합니다. 멸망의 위기상황에서도 포카스는 정적을 숙청하며 권좌 유지에 힘씁니다.
608년, 마우리키우스 황제가 임명한 동로마제국의 아프리카 총독 이라클리오스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같은 이름의 아들 이라클리오스가 2년의 준비 끝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합니다. 포카스 황제의 실정에 질린 귀족들의 호응으로 아들 이라클리오스는 포카스 황제를 죽이고 제위에 오릅니다. 제위에 오르는 데는 성공했으나 페르시아의 공세로 인해 동로마제국 영토의 절반 이상을 잃습니다. 신임 황제는 수세에 몰리면서도 병력을 보호하며 반전을 노립니다. 622년, 군대를 재편한 이오클리오스는 시리아 대부분을 회복하고, 이듬해에는 아르메니아로 진군해 승리합니다. 626년, 페르시아는 동로마를 괴롭히던 또 다른 세력인 아바르족과 연합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략합니다. 수성에 성공한 동로마제국이 다시 반격합니다. 627년, 오늘날 이라크 북부에서 벌어진 니네베 전투에서 동로마제국은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호스로 2세는 연이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패장과 병사 모두를 처형합니다. 대신 노예들을 징집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크테시폰(지금의 바그다드 인근)에서 일전을 벌이려 하나 무모한 전쟁에 질린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호스로 2세를 몰아내고 그의 아들인 카바드 2세를 제위에 올립니다. 호스로 2세는 애첩의 자식에게 제위를 넘겨주기 위해 적자인 카바드 2세를 지하감옥에 감금했었습니다. 628년, 동로마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던 호스로 2세는 눈앞에서 가족들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자신이 부친을 처형했듯 아들에 의해 처형당합니다.
이라클리오스는 카바드 2세의 요청으로 평화협정을 맺습니다. 실지 회복과 성십자가의 반환 등 위기의 제국을 구한 이라클리오스 황제는 카르타고의 한니발로부터 로마를 구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견주는 최고의 찬사를 듣습니다. 여기까지였다면 로마 최고의 황제라는 칭호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610년, 무함마드가 아라비아반도의 메카에서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을 창교합니다.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전통 칼리파가 이슬람세계를 통치합니다. 633년,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공략합니다. 636년, 페르시아는 까디시야 전투에서 이슬람군에 궤멸 수준의 패배를 당합니다. 651년, 사산왕조는 멸망하고 왕족 중 일부는 당나라로 망명해 사산왕조 부흥운동을 전개하다 한족에 동화됩니다.
이슬람의 칼날이 동로마제국을 향합니다. 나이 60을 바라보는 이라클리오스 황제의 지휘력은 페르시아 때와는 다릅니다. 634년, 페르시아, 동로마제국, 아랍의 기독교도가 연합해 이슬람과 벌인 피라즈 전투에서 할리드가 지휘하는 이슬람군이 10배가 넘는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합니다. 637년, 동로마제국의 영역인 예루살렘이 이슬람에게 함락됩니다. 페르시아와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국력상실, 종교적 선택의 관용, 할리드리는 뛰어난 이슬람 장군이 결합해 동로마제국은 짧은 기간 안에 페르시아로부터 힘겹게 되찾은 동방 영토의 대부분을 이슬람 세력에 빼앗깁니다.
호스로 2세, 당대에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최대 영역을 기록하지만, 한순간 모든 걸 잃고 아들에게 처형당하는 참담한 최후를 맞습니다. 정복전쟁 과정에서 죽어야 했던 수많은 젊은 목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라클리오스, 위기의 동로마제국을 구하고 로마역사 최초로 페르시아를 압도하지만, 이슬람의 거센 파도를 넘지 못하고 평생 전장을 누비며 이룬 업적 대부분을 잃고 맙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군주였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더라도 죽음에 맞닥뜨린 순간 두 사람 모두 ‘인생무상’이란 말을 수차례 되뇌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