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욕망과 사랑, 인류사를 지탱해 온 두 감정입니다. ‘욕망’은 방향과 과정 모두 목표지향적입니다. 그것이 부든 권력이든 명예든 아니면 다른 어떤 형태의 것이든, 심지어 욕망의 범주 내에서도 사랑으로 존재하며 인류를 존속시켜 온 동력입니다. 때로 그것이 선한 결과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개 그것의 성취는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지라 ‘욕망’이란 용어 자체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반면 ‘사랑’은 정형화하기 어렵습니다. 이해 불가한 수많은 사랑을 역사와 현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세속적 잣대로 이해 불가한 때도 있지만, 모든 걸 차치하고도 분석 불가능한 사랑이 있습니다. 아마도 사랑은 방향성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Let The Right One In’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렛미인’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남자아이와 누군가를 죽여 흡혈해야 살아갈 수 있는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뱀파이어라는 가벼운 소재로 사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고심하게 만드는 연극입니다. 흡혈귀라는 초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하지만, 종종 현실적인 게 초현실을 능가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어느 대통령 부부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흡혈귀는 서구사회에 전해오는 오래된 설화입니다. 1897년 영국작가 브램 스토커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소설 ‘드라큘라’를 발표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탓에 드라큘라는 흡혈귀의 대명사가 됩니다.
소설에 차용된 ‘드라큘라’는 왈라키아공국의 공작인 블라드 3세를 모티브로 합니다. 왈라키아공국은 몰다비아공국과 함께 현대 루마니아의 전신이 되는 나라이고, 헝가리와 오스만제국 사이에서 수시로 통치자가 바뀌는 비운의 국가입니다. 1431년, 블라드 3세는 블라드 2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블라드 3세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블라드 2세가 왈라키아공국의 공작이 됩니다. 블라드 2세는 ‘용’이라는 뜻의 ‘드라큘’로 불렸고 블라드 3세는 ‘용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드라큘라’라는 이름을 자주 사용했답니다. 블라드 3세와 동생 라두는 오스만제국의 볼모가 되어 메흐메드 2세와 함께 성장합니다. 마치 전국시대 말기 진왕 정(훗날 진시황)과 연나라 태자 단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정과 단은 조나라에서 볼모를 살며 친분을 쌓습니다. 정이 왕이 되고 단은 다시 진나라의 볼모가 됩니다. 진왕이 단을 박대하자 단이 몰래 귀국해 자객 형가를 보내 진왕을 죽이려다 실패합니다.
1447년, 블라드 2세는 헝가리와 공국 내 귀족들의 공격을 받아 차남과 함께 처참하게 죽습니다. 1448년, 블라드 3세가 오스만제국의 군대를 빌려 왈라키아공국의 공작이 됩니다. 그러나 헝가리의 반격을 받아 두 달 만에 공작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1456년, 블라드는 공작을 죽이고 복위에 성공하지만, 여전히 귀족들의 횡포가 심합니다. 블라드는 연회를 열어 500명의 귀족을 초대하고는 모두를 말뚝에 꽂아 죽입니다. 이후에도 귀족들을 초대해 산채로 태우거나 땅을 파게 하고 생매장해 버립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 2세는 발칸반도 대부분을 오스만제국의 세력권 아래 두고 헝가리를 향해 북진합니다.
소국인 왈라키아공국이 오스만제국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블라드는 오스만제국의 사절이 터번을 벗지 않자 예절에 어긋난다며 터번 위로 대못을 박아 사절 전부를 죽인 뒤 이스탄불로 보냅니다. 오스만제국의 1차 원정은 매복에 성공한 왈라키아공국이 대승을 거두고 블라드는 2만 명이 넘는 포로를 막대에 꽂아 죽입니다.
1462년, 메흐메트 2세가 15만의 대군을 이끌고 친정합니다. 블라드는 게릴라전으로 맞서지만, 역부족입니다. 블라드가 실각하고 동생 라두가 왈라키아공국의 새로운 공작이 됩니다. 1476년, 라두를 죽이고 공작이 된 바사라브 3세를 블라드가 몰아내고 세 번째 공작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듬해 블라드는 오스만제국과 싸우다 나이 마흔일곱에 전사합니다.
당대에는 수많은 사람을 막대에 꽂아 죽인 잔혹함 때문에 ‘드라큘라’보다는 꼬챙이라는 뜻의 ‘체페슈’로 더 유명했답니다. 루마니아는 조국을 위해 싸운 영웅으로 블라드를 숭배한다고 합니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브란성이라는 관광자원을 루마니아에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