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현대국가에서 대통령 개인의 역량으로 국운을 바꾼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국제 일진 놀이에 빠져 뜯어낸 삥으로 미국을 부강하게 만든다고 설레발치는 트럼프, 국민을 전쟁의 나락으로 이끈 푸틴, 주변 국가를 적으로 만들며 자국의 이익에 집착하는 시진핑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인 듯합니다. 미국의 몰락까지는 아니어도 미국중심의 국제질서를 해체하고, 종이호랑이 러시아의 나약한 민낯을 국제사회에 드러내고, 좌충우돌로 중국이라는 국가의 역량을 스스로 규제하는 리더들입니다. 그런데 불과 30년 전에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비극의 땅에서 기적 같은 성과를 만들고 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19C 중반, 말라리아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키니네 요법이 보급되면서 아프리카 내륙에 대한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침탈이 본격화되고 아프리카 주민들은 참혹한 식민지인의 삶으로 내몰립니다. 아프리카 중부에 위치한 르완다는 1899년 독일의 식민지로 시작해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1919년부터는 벨기에의 식민지가 됩니다. 벨기에는 식민통치 수단으로 소수부족인 투치족(15%)을 이용해 다수부족인 후투족(84%)을 관리합니다. 식민지 관리자가 투치족에게 명령합니다. ‘후투족에게 채찍을, 아니면 너희가 맞을 것’.
1950년대 말, 투치족이 르완다의 독립을 추진하자 후투족은 독립 후 지배층이 될 투치족에 대한 우려가 생깁니다. 벨기에가 독립을 막기 위해 이 ‘우려’를 이용합니다. 1959년 후투족이 일으킨 반란과 학살로 수많은 투치족이 살해되거나 이웃 나라로 피난합니다. 1961년, 르완다가 독립하고 벨기에는 투치족에 대한 보호조치 없이 후투족에게 권력을 넘깁니다.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핍박이 시작됩니다. 소규모 학살이 이어지던 1987년, 투치족은 우간다에서 군사조직인 르완다 애국전선(RPF, Rwandan Patriotic Front)을 결성합니다.
1994년, 후투 출신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피격되자 분노한 후투족이 3개월간 투치족과 배신자로 낙인된 후투족을 대상으로 대학살을 자행합니다. 80만 명 이상이 희생된 제노사이드는 투치족의 RPF가 수도인 키갈리를 점령하면서 끝이 납니다. 투치족의 70~80%가 대학살의 희생자가 됩니다. 벨기에 식민지 이전, 투치족이 왕족을 형성하긴 했어도 두 부족은 같은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며 갈등 없이 지냈다고 합니다. 결국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을 광풍처럼 휩쓴 제국주의의 망령이 세기말까지 이어져 참극을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투치족이 주도하는 르완다 정부는 보복을 금지하고 국민통합정책을 펼칩니다. 국민통합은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매년 7~8%의 고도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의무교육과 의료보험 등 복지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RPF를 이끌었던 폴 카가메(Paul Kagame)가 있습니다. 2000년에 대통령이 되었고, 2024년 선거에서 99.18%의 득표율로 4선에 성공합니다.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국민이 나서서 장기집권할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칩니다. 도덕적 추문이나 부정부패 없이 죽어라 일만 하는 바보 대통령이라며 국민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한답니다.
불과 30년 전, 서로 살육하던 두 부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통합을 이루어 낸 것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독재정치, 장기집권, 부정부패로 이어지는 아프리카 독재자의 공식을 거부하고 르완다를 정상적인 나라로, 좀 더 민주화된 나라로 이끌고 있으니 국민의 압도적 지지는 당연한 귀결일 수 있겠네요. 적대와 증오를 기반으로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세력과 비교하니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