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사람 이야기

by 오세일

지금은 운행시간이 바뀌었지만, 백무동을 출발해 안양을 거쳐 가는 14시 30분 버스가 있었습니다. 금요일 막차를 타고 중산리를 가든 백무동을 가든 이 버스를 타기 위해 주로 백무동이나 마천 쪽으로 하산합니다. 그러다 보니 중산리에서 장터목으로 바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미답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지리산행은 대중교통보다 안내산악회 버스를 더 자주 이용합니다. 이맘때는 산불예방을 위해 천왕봉 인근을 제외한 주능선을 통제합니다. 한 안내산악회에서 3시쯤 중산리에 내려주고 14시에 픽업하는 천왕봉 일출 코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천왕봉에서 장터목 거처 중산리로 하산하는 게 가능한 일정입니다.

지난 토요일 새벽 3시 30분 중산리를 출발해 6시에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기다려 일출을 보고 장터목을 거처 중산리로 계곡을 따라 하산했습니다. 큰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평범했습니다. 미답지를 걸었다는 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천왕봉 일출은 드물게 장엄했습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초봄의 산이라 등산객이 많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라를 구한 조상을 둔 사람이 누구냐는 농담이 등산객들 사이에 오갔고, 마침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 모두들 흔쾌히 장군님 덕분인 걸로 결론 내리더군요.

장터목에서 물 끓이고 컵라면을 꺼내려는데, 없네요. 추위에 떨며 차가운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알콜성 치매를 걱정합니다. 산에서 금주가 시행된 지 몇 해 지나 이제 정착했나 봅니다. 그래도 막걸리가 아쉽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 놀며 쉬며 하산합니다. 11시에 중산리에 도착해 산채비빔밥에 막걸리를 주문하고 이른 점심을 시작합니다. 지난번 대원사 인근 식당에서도 그랬듯이 되로 파는 더덕막걸리만 있습니다. 장수막걸리에 익숙해서인지 맛이 기대에 못 미칩니다. 하산하고 마시는 막걸리가 산행 목적 중 하나인데 아쉽습니다.

몸에 쌓이는 피로가 세월 따라 더해 가네요. 밤늦게 출발하는 마지막 산행이라고 번번이 다짐하지만, 며칠 지나니 다시 마음이 그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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