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왕과 군주론

역사 이야기

by 오세일

춘추시대, 장강을 기반으로 하는 초나라는 황하를 기반으로 하는 중원국가들로부터 ‘남만(南蠻)’이라 불리며 멸시받는 처지였습니다. 중원국가들은 상징적이나마 주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봉건질서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초의 군주 웅통은 주가 힘을 잃자 기원전 704년, 왕호를 사용합니다. 이때부터 중원 진출을 노리는 초와 중원국가들 사이에 끝없는 항쟁이 시작됩니다.


기원전 613년, 초장왕이 왕위에 올라 22년간 재위하며 수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남달리 총명해 태자 시절부터 백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초장왕은 왕위에 오르자 “누구든 간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라는 경고와 함께 술과 사냥으로 세월을 보냅니다.


삼 년이 지나자 신무외라는 신하가 술판을 벌이고 있는 초장왕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오색 빛 영롱한 큰 새가 초나라 높은 곳에 앉아 삼 년이 지났지만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그 새가 무엇이겠습니까?” 초장왕이 웃으며 대답하길 “그것은 비범한 새요. 삼 년을 날지도 울지도 않았으니,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르고 한번 울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오.” ‘불비불명(不飛不鳴)’의 고사입니다. 그러나 초장왕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소종이 왕을 경계했고, 초장왕은 경고한 대로 목을 베려 합니다. 그러나 소종은 왕이 왕도의 길을 걷게 한다면 죽어도 좋다며 물러서지 않습니다. 초장왕이 수용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충언한 신무외와 소종에게 나라의 중책을 맡기고 무능한 관리를 몰아내고 새 인재를 등용합니다. 삼 년은 신하들의 옥석을 가리고 국정을 진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초장왕의 눈부신 활약이 시작됩니다.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초장왕은 주나라 국경에서 대군을 사열하며 무력을 과시합니다. 초는 왕호를 사용하고 있지만 중원의 입장에서는 무도하게 왕호를 참칭하는 남쪽 오랑캐일 뿐이었습니다. 국력으로는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주였지만 수백 년 전통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주는 왕손 만을 파견해 초장왕을 만나게 합니다. 초장왕은 권위의 상징인 구정(九鼎)의 크기와 무게에 대해 묻습니다. 구정은 하나라 시조 우왕이 만들었다는 아홉 개의 가마솥으로 주가 천하의 주인임을 상징하는 신물이었습니다. 구정에 대한 관심은 주의 권위에 대한 관심이었고, 초가 주를 대신하겠다는 시위였습니다. 그러나 무늬만 천자인 주였지만 수백 년 전통에서 나오는 권위는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정의 크기와 무게는 덕(德)에 있지 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이 대답하자 초장왕이 호기를 부리며 말합니다. “덕 같은 건 모르오. 다만 초나라의 부러진 창끝만 모아도 구정 따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소.” 만이 다시 대답합니다.


“하나라 걸왕이 무도하자 구정은 상나라로 옮겨졌고, 상나라 주왕이 무도하자 구정은 다시 주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천자가 덕이 있으면 그 정은 작아도 무거우며, 천자가 덕을 잃으면 그 정이 아무리 커도 오히려 가볍습니다. 모든 것이 천명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구정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왕께서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늘날에는 상대를 떠보아 약점을 잡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문정경중(問鼎輕重, 정의 경중을 묻다)’의 고사입니다. 무안해진 초장왕은 군사를 거두어 돌아갑니다.


승승장구하던 초장왕에게 시련이 닥칩니다. 초장왕의 등장으로 기득권을 상실한 영윤(재상) 투월초가 일족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원정에서 돌아오는 초장왕의 군사와 대치합니다. 반란군이 군사력도 우세했지만, 초장왕의 군사는 오랜 원정에 지쳐있었습니다. 첫 싸움에서 패한 초장왕은 전략을 바꿔 혼신을 다해 도망갑니다. 반란을 승리로 마무리하려던 반란군은 무리한 추격전을 벌이다 왕군의 반격을 받아 진압당합니다.


반란을 평정한 초장왕은 모든 대신이 참석하는 연회를 엽니다. 군신이 모두 기분 좋게 취했을 때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지고 연회장이 암흑으로 변하자 왕의 애첩인 허희를 껴안는 자가 있었습니다. 놀란 허희는 그자의 갓끈을 끊고 왕에게 일러 범인을 잡게 합니다. 어둠 속에서 왕이 외칩니다. “거추장스러운 갓끈일랑 끊어 버리고 마음껏 먹고 마셔라.” 사람들이 이 연회를 절영회(絶纓會)라 불렀습니다. 훗날 큰 공을 세운 장수가 자신이 절영회의 범인임을 밝힙니다.


당시 중원의 서쪽에는 훗날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진시황의 나라 진(秦), 가운데는 한·위·조 삼국으로 분리되면서 춘추와 전국시대의 기점이 되는 진(晉), 동쪽에는 제(齊)가 대국이었으나 그중 진(晉)이 가장 강해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초와 끝없이 반목하게 됩니다.


597년, 초장왕은 진(晉)과 벌인 ‘필의 전투’에서 승리해 632년 ‘성복의 전투’에서 패한 조부 초성왕의 복수를 합니다. 필의 전투에서의 승리로 초장왕은 제환공과 진문공에 이어 춘추시대 세 번째 패자가 됩니다.


초와 친한 정을 진(晉)이 공격하자 초는 진과 친한 송을 공격해 정을 구하려 합니다. 패전에서 회복하지 못한 진은 송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대신 송이 조금만 버티면 멀리 원정 온 초의 군량이 떨어져 철군할 거라 판단하고 곧 구원군을 보낼 테니 조금만 버티라는 문서를 보내기로 합니다. 해양이라는 사람이 문서를 갖고 송으로 가다 초군에게 잡혀 초장왕 앞으로 끌려갑니다. 문서를 읽은 초장왕이 해양에게 “진이 송을 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외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해양이 동의하고 송의 도성인 수양성 앞에서 외칩니다. “나는 초나라에 사로잡힌 몸이다. 곧 진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도우러 올 것이니 항복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라!”

화가 난 왕이 신의 없는 자라며 죽이려 하자 해양이 말합니다. “나는 한 번도 신의를 잃은 일이 없습니다. 내가 신의를 지켜야 하는 대상은 초가 아니라 진입니다. 만일 초의 신하가 다른 나라를 위해 신의를 지킨다면 왕께서는 이를 신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초장왕이 해양을 살려 보냅니다.


해양의 말을 믿은 송나라는 항복하지 않고 해를 넘깁니다. 식량이 바닥난 수양성은 생지옥이었지만 재상인 화원이 군민을 다독거리며 잘 버팁니다. 화원이 밤에 성을 빠져나와 평소 친분이 있는 초의 관리 측을 만납니다. 측이 송의 상황을 묻자 화원이 솔직히 대답하고는 만일 초군이 물러나면 화친하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화원의 솔직함에 감동한 측도 초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나서 왕에게 보고합니다. 적에게 비밀을 누설했다며 왕이 진노하자 측이 말합니다. “다 죽어가는 송의 신하도 속이지 않는데, 대국인 초의 신하가 어찌 속이겠습니까?” 왕이 수긍하고 두 나라는 화친합니다.


기원전 591년, 초장왕이 죽습니다. 춘추의 한 시절을 자신의 시대로 만든 초장왕, 풍류를 알면서도 절제할 줄 알았고 뛰어난 재능을 갖고도 항상 신하들의 충언을 놓치지 않았던 춘추 제일의 매력남. 수라상에 올라온 미나리에 거머리가 붙어 있자 잠시 망설이던 왕이 미나리를 집어 거머리와 함께 삼킵니다. 규정에 따르면 요리사가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켜본 내관이 나중에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러니 우리 왕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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