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양공의 인(仁), 백성을 울리다.

역사 이야기

by 오세일

송(宋)나라는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제사와 유민통합을 위해 상나라 땅에 세운 제후국입니다. 상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지녔고 봉건작위가 첫째인 공작의 나라라 자부심도 높았습니다.


기원전 651년, 송환공이 죽고 송양공이 군위를 잇습니다. 송양공의 재위는 춘추 첫 번째 패자인 제환공의 말기와 겹치는데 제환공의 패권을 보면서 자신도 패자가 되려는 큰 뜻을 품습니다. 문제는 뜻을 이루기엔 송이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당시 패권을 논할 만큼의 국력을 지닌 나라는 진(晉), 초(楚), 제(齊), 진(秦) 네 나라 정도였지요.


송양공이 세자가 되기 전 서형(후궁이 낳은 형)인 목이에게 세자를 양보했으나 송환공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환공은 이런 송양공이 어질다며 셋째 아들 소가 군위에 오르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제환공이 죽자 적자가 없었던 여섯 아들은 군위를 놓고 혼란에 빠집니다. 송양공의 도움으로 소가 군위에 올라 제효공이 됩니다.


제나라의 군위를 정한 송양공은 제나라의 패권이 자신에게 넘어 온 듯 착각에 빠집니다. 자존감이 남달랐던 송양공은 이때부터 패권과 인의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재상인 서형 목이가 국력의 미약함을 들어 패권의 불가함을 설명했으나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송양공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춘추 첫 번째 패자였던 제환공은 42년 재위 동안 아홉 번의 회맹을 열었습니다. 송양공도 이를 본받아 주변의 작은 나라를 대상으로 회를 소집합니다. 증나라 군주가 마지못해 늦게 참석하자 늦은 죄를 물어 삶아 제사 지내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실망한 조나라 군주가 이탈해 귀국하고 분노한 송환공은 3개월 동안 조의 도성을 공격했으나 성과 없이 철군합니다.


제환공이 죽고 난 뒤 천하의 패권은 초나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작은 조마저도 어쩌지 못한 송양공이 패권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했지만 패권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져 초의 힘을 빌려 패권을 이루겠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맙니다. 자신이 회맹을 소집하면 참석할 나라가 없으니 초나라와 회맹을 연 다음 그 힘을 이용해 모든 나라 제후를 소집해 맹주가 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목이가 말렸지만 듣지 않습니다.


뇌물을 주고 초로부터 회맹의 약속을 받아낸 송양공은 제나라 땅에서 초성왕, 제효공과 회맹을 엽니다. 회맹의 쟁점은 누가 맹주냐입니다. 송양공이 우겼고 초성왕이 받아들여 회맹을 주도합니다. 초성왕의 얼굴에 스친 냉소를 패권에 들떠있던 송양공은 보지 못합니다. 이어 일곱 나라를 대상으로 회맹을 소집합니다. 목이가 초의 음모를 예견하고 군사를 대동하라 했지만 송양공은 인의가 아니라며 군사 없이 회맹에 참석합니다. 회맹이 시작되자 맹주를 뽑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초성왕의 추천을 기다렸으나 반응이 없자 송양공은 스스로 맹주가 되려 합니다. 이번에는 초성왕이 용납하지 않고 왕호를 쓰는 자신이 맹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나라 체제 아래서 초의 작위는 공후백자남 중 넷째인 ‘자작’이었지만 주왕실을 무시하고 왕호를 사용해 중원국가들은 초가 왕호를 참칭한다 여겼습니다. 흥분한 송양공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합니다. “가짜 왕이 진짜 공보다 높다는 말인가?” 격분한 초성왕이 회맹에 참석한 군주들에게 누굴 위해 회맹에 참석했는지를 묻습니다. 제후들이 입을 모아 초를 외칩니다. 속에 갑옷을 입은 초의 군사들이 송양공을 잡아 초성왕 앞으로 끌고 갑니다. 초성왕이 분수도 모르고 패권을 탐한 죄, 증나라 군주를 삶아 죽인 죄를 묻고는 군사를 몰아 송의 도성인 수양성으로 진격합니다.


목이는 회맹이 난장판이 되자 몰래 빠져나와 송으로 돌아가 군위에 오른 뒤 초와의 싸움을 준비합니다. 초군이 수양성 아래로 몰려와 항복하지 않으면 송양공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나 송은 목이가 군주가 되었으니 마음대로 하라 답변합니다. 목이를 중심으로 초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중단된 회맹이 다시 열리고 정나라의 주도로 초성왕이 맹주가 됩니다. 송양공도 말석에서 초성왕이 맹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풀려납니다. 송양공은 송으로 돌아갈 수 없어 위나라로 몸을 피합니다. 목이가 사람을 보내 송양공을 데려옵니다. 목이가 군위에 올랐던 것은 초로부터 송양공을 구하기 위한 계책이었습니다. 다시 군위에 오른 송양공은 초나라가 뼈에 사무치도록 미웠지만, 강한 초는 어찌 못하고 초성왕이 맹주에 오르도록 주선한 정나라에 화풀이합니다. 공자 목이가 말립니다. 정을 공격해도 이길 수 없을뿐더러 초가 구원해 줄 것이니 때를 기다리자 했으나 끝내 정으로 진군합니다. 정을 구하려는 초가 송으로 진격하고, 송군은 초군을 막기 위해 회군해 홍수(泓水) 가에 진을 칩니다.


대사마인 공손고가 초에 사죄해서라도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간청했으나 아직 패업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송양공은 초와의 결전을 고집합니다. “제환공은 초를 물리치고 패업을 이루었다. 과인이 초를 피하고 어찌 패업을 이루겠는가?” 공손고가 묻습니다. “초는 군사도 많고 병장기도 좋으며 용맹하기까지 해 우리 군사들은 초군을 두려워합니다. 초를 이긴다고 어찌 장담하십니까?” 송양공이 답합니다. “옛날 주나라가 적은 군사로 상나라를 이길 수 있었던 건 주에 ‘인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인의’가 있으니 어찌 이기지 못하랴!”


초군이 강을 건너려 하자 공손고가 송양공에게 간합니다. “초군이 강을 건널 때 공격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송양공이 답합니다. “강을 건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인의의 군대’가 할 짓이 아니다.” 강을 건넌 초군이 혼란스럽자 공손고가 거듭 간합니다. “초군이 진을 꾸리기 전에 공격한다면 그나마 승산이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송양공은 절박하게 간청하는 공손고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똑같은 주장을 반복합니다.


강을 건넌 초군이 진을 갖추고 싸울 준비를 끝낸 걸 확인한 송양공은 그제야 전군에 진격 명령을 내립니다. 송양공도 긴 창을 들고 초군을 향해 돌진합니다. 그러나 가상한 것은 용기뿐, 다리에 화살을 맞고 쓰러져 있는 송양공을 공손고가 구해 송나라로 도망갑니다. 무모한 싸움으로 전사한 군사의 가족들이 궁밖에 모여 통곡하며 송양공을 원망합니다. 백성을 사지로 몰아넣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후회할 만도 하건만 송양공은 비록 전쟁에선 졌을지라도 끝까지 인의를 지킨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일말의 후회가 없습니다.


기원전 637년, 송양공은 홍수의 전투에서 당한 부상이 악화돼 군위 14년 만에 패권의 한을 품고 죽음을 맞습니다. 송양지인(宋襄之仁), 명분에 집착하거나 불필요한 인정과 동정을 베풀다가 일을 그르치는 행동을 일컫는 고사성어입니다. 2,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리석은 이름으로 남았으니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죗값이 될까요?


기원전 331년,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군과의 일전을 위해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대치합니다. 5C 초에 벌어진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의 운명을 놓고 유럽의 동남쪽에서 벌어졌다면 이때는 페르시아의 명운을 놓고 아시아의 서남쪽에서 벌어집니다. 양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알렉산더의 휘하 장군이 야습을 제안합니다. 알렉산더가 답합니다. “나는 승리를 훔치러 오지 않았다.” 대신 야습한다는 정보만 흘려 페르시아군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이튿날 지친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둡니다. 320년 동안 아시아 서남부의 초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는 멸망합니다. 추구하는 가치실현을 위해 송양공이 담보한 것이 백성의 생명이었다면, 알렉산더가 담보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영광을 이끌었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페리클레스, 결과가 모호한 전쟁은 피했고, 피할 수 없는 전쟁은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전투에 나섰으며, 무모한 전투를 시도했던 장군은 승리했다 하더라도 휘하에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시민도 내 실수로 죽게 하지 않겠다.” 그가 가장 중요시했던 가치라 합니다.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백성을 하늘같이 여기신 분,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구들이 오줌 지리게 하는 분, 이 둘을 합친 것보다 천만 배는 더 뛰어난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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