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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Dec 16. 2022

무려 테스형의 연인이었던 사내

역사 이야기

선동정치가 알키비아데스(BC450-404), 아테네 사람으로 정치적 분쟁을 불러일으켜 펠로폰네소스 전쟁(BC431~404)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외모부터 재능까지 당대의 엄친아였던 그는 사악한 리더였습니다.

 

기원전 422년,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강경파였던 클레온과 브라시다스가 동시에 전사하자 이듬해 아테네의 니키아스는 민회를 설득해 스파르타와 평화조약을 체결합니다. 막 서른이 된 알키비아데스는 평화조약에 반대하는 주전파의 리더로 부상합니다. 기원전 415년,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에 있는 스파르타의 동맹국인 시라쿠스를 공격하도록 선동합니다. 아테네는 시라쿠스 원정을 결정하고 알키비아데스를 시칠리아 원정군의 지휘관으로 임명합니다. 출정 전날 밤, 누군가에 의해 신전이 훼손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알키비아데스의 정적들이 그를 범인으로 몹니다. 평소 교만했던 언행 탓에 여론도 적대적으로 바뀝니다.


신성모독죄로 재판에 회부된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로 도망친 뒤 스파르타를 위해 일합니다. 스파르타와 시라쿠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조언에 따라 아테네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망을 구축합니다. 기원전 413년, 국력의 대부분을 쏟아부은 시라쿠스 원정에서 아테네는 ‘시칠리아 대재앙’이라고도 불리는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고 패권도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스파르타의 환심을 얻기 위해 절제된 생활을 하던 알키비아데스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스파르타 왕비 티마이아와 간통하다 들켜 페르시아로 도망간 뒤 아테네의 민주정과 과두정의 갈등을 이용해 아테네로의 복귀를 계획합니다. 기원전 410년, 스파르타가 맹주인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벌인 키지코스 해전에서 압도적 전공을 세운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로 복귀합니다.


기원전 406년 알키비아데스가 함대를 비운 사이에 스파르타 함대에 참패하고, 그의 정적들은 패배의 책임을 함대 지휘관이었던 알키비아데스에게 전가합니다. 알키비아데스는 또다시 추방됩니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해 분란을 일으켰으며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기원전 405년, 아테네 함대는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에서 리산드로스가 지휘하는 스파르타 함대에 완패하고 30년 가까이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항복으로 끝을 맺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망명지에서 페르시아 땅으로 피신하지만, 리산드로스에 의해 최후를 맞습니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인성으로 인해 조국 아테네를 패망의 길로 이끈 알키비아데스, 선동정치가 주는 폐해의 전형이 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소크라테스(BC470~399)의 애제자 중 한 명입니다. 당시 풍습대로 둘은 연인관계였으나 알키비아데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두 차례 선거가 끝나고 당권을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의 시기가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패자인 민주당이 더 큰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당규에 따라 당원들이 선택하면 될 문제인데 팬덤정치가 민주당의 숨통을 끊으려 하네요. 지지할 권리와 지지하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다수에 의해 짓밟히면 정당으로서의 존재가치도 짓밟히게 되지요. 민주당의 적은 민주당 내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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