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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Dec 23. 2022

자식 잃은 슬픔은 백성들도 같을까?

역사 이야기

기원전 540년,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초영왕은 양자강 하류에서 부상하는 오나라를 제압하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하는 패권을 이루려고 합니다. 먼저 길목에 있는 서나라를 공격합니다. 겨울에는 거병하지 않는 게 관례이지만, 마음이 급했던 초영왕이 겨울에 출병하는 무리수를 둡니다. 쉽게 함락될 것 같았던 서나라가 오나라의 도움을 받아 항전합니다. 장기전이 되자 병사들은 추위로 극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무심결에 왕이 춥다고 하자 옆에 있던 정단이라는 신하가 왕에게 간합니다. “왕께선 막사 안에서 두꺼운 가죽옷을 입고서도 추운데 얇은 옷을 입고 거센 바람과 폭설 속에서 싸워야 하는 병사들의 고통은 어떻겠습니까? 너무 오래 도성을 비우면 변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철군하십시오.” 왕은 오히려 임시로 궁을 지어 물러날 뜻이 없음을 확고히 합니다.


동생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과 도성을 지키던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옵니다. 자식을 잃고 오열하던 왕이 정단에게 묻습니다.


“자식 잃은 슬픔은 백성들도 같을까?”

“한낱 짐승도 새끼를 사랑하는데 어찌 사람이겠습니까!”

“과인이 수많은 누군가의 자식들을 죽였으니, 내 자식 죽인 것도 탓할 게 못 되는구나.”


도성을 장악한 반란군이 왕을 따르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선포를 합니다. 왕이 일전을 준비하나 신하와 군사들이 왕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왕이 모든 걸 체념합니다. 이때 왕 앞에 한 사람이 부복합니다. 신무우의 아들 신해라는 사람입니다.


지난날 신무우가 관직에 있을 때 하인이 죄를 짓고 도망가 왕궁의 병사가 됩니다. 소식을 들은 신무우가 달아난 하인을 잡으려고 소란을 피우다 초영왕 앞에 끌려갑니다. 사정을 듣고 난 왕이 지금은 궁성을 지키는 자이니 용서하라고 합니다. 신무우가 말합니다. “상하의 질서가 정연해야 나라도 안정됩니다. 왕께서 죄인을 두둔하시면 나라의 질서가 어찌 되겠습니까? 죽을지언정 그리는 못 하겠습니다.” 신무우의 주장에 공감한 왕이 하인을 내주었고 신무우는 왕에게 은덕을 입었다고 아들에게 말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해가 아비의 은혜를 갚으려 합니다. 굶주린 왕을 집에 데려와 음식을 주고 두 딸을 왕의 침실로 들여보냅니다. 그러나 상심한 왕은 자살하고 신해는 두 딸을 죽여 왕과 함께 묻습니다.


한 시대가 강요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현재의 가치를 기준으로 그 시대 가치의 옳고 그름을 재단할 순 없겠지만, 시대 가치에 과잉 몰입해 충절을 사려는 수많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과잉 충성을 충신의 이름으로 전하지 않습니다.


기원전 547년, 최저가 아내와 사통하던 제장공을 죽이자 안영이 시신 앞에 엎드려 통곡합니다. 최저가 안영에게 군주를 따라 죽을 것인가를 묻습니다. 안영이 대답합니다. “가치 없는 죽음으로 충절을 사지는 않겠소.” 시대가 조작한 가치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지혜의 정점은 아닐까요?


오래전 병원에서 막 태어난 둘째를 처음 받아들고 “아이가 성년이 되면 모병제가 실시돼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겠지?”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군대란 가슴 깊이 남아 있는 상처 같은 것, 혹은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된 트라우마 같은 것인가 봅니다.


어제 아들 녀석을 육군훈련소에 보내고 왔습니다. ‘라떼’보다 좋아진 군대, 짧은 군복무에 위안 삼으며 담담할 줄 알았는데 정작 씩씩하게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흔들렸습니다. 돌아오며 오래전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입대하는 둘째 아들을 젖은 눈으로 배웅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마치 며칠 전 일인 듯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생사를 가르는 전쟁터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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