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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Dec 25. 2022

로마의 젊은 피,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역사 이야기

기원전 191년경, 당대 최고의 명장인 235년생 로마의 스키피오와 247년생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은 누구입니까?”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이지요.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무찔렀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경계 너머 세상의 끝까지 갔으니까요.”

“다음은 누구입니까?”

“그리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입니다. 병법의 대가이며, 진영 짜는 것에 대해 처음 생각해 냈지요.

“다음은 누구입니까?”

“나, 한니발이지요.”

스키피오가 웃으며 묻습니다. “만약 자마전투에서 당신이 승리했다면요?”

한니발이 대답합니다. “그랬다면 세상 모든 장수 중 내가 첫째이지요.”


기원전 275년, 로마는 그리스 에페이로스왕 피로스를 몰아내고 이탈리아반도의 패권을 이룹니다. 이어 기원전 264년부터 지중해의 패권국인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시칠리아를 놓고 23년 동안 벌인 1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하면서 지중해의 패권마저 장악합니다.


카르타고의 식민지였던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한니발은 이베리아반도(스페인, 포르투갈)를 기반으로 성장하며 로마와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기원전 218년, 27세에 이베리아반도의 카르타고군 사령관이 된 한니발은 로마의 동맹시인 사군툼을 공격함으로써 2차 포에니 전쟁을 시작합니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에 도착한 29세 한니발은 로마군과의 두 차례 전투에서 압승을 거두며 로마를 위기에 빠트립니다. 기원전 216년, 칸나이에서 로마의 명운을 걸고 5만의 한니발군과 8만 6천의 로마군이 격돌합니다. 앞선 두 차례 전투에도 기병으로 참전해 로마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던 스키피오도 참전합니다.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는 역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합니다. 문헌마다 차이는 있으나 한니발군 사망자 6천, 로마군 사망자는 최대 6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살의 스키피오는 목숨을 보전해 달아납니다.


기원전 211년, 이베리아반도에서 카르타고와의 전투에 패한 스키피오의 부친이 전사합니다. 스키피오는 이베리아에 파병할 2개 군단의 지휘권을 요청합니다. 이베리아 원정은 죽음과도 같았기에 아무도 자원하지 않아 젊은 스키피오는 지휘관이 됩니다. 이베리아는 한니발의 근거지이기 때문에 방치할 수 없습니다. 젊은 스키피오는 군사적 재능을 발휘해 이베리아에서 카르타고 세력을 궤멸시킵니다.


29세인 스키피오가 집정관에 선출됩니다. 원로원의 반대에도 스키피오는 카르타고가 있는 아프리카 원정을 추진합니다. 아프리카 원정에서 연승을 거두며 카르타고를 압박하자 카르타고는 이탈리아에 있던 한니발을 소환해 스키피오와의 일전을 준비합니다.


기원전 202년, 자마전투에서 당대 최고의 두 명장이 마주합니다. 비슷한 병력이 맞섰으나 기병에서 우위에 있던 로마가 압승을 거둬 16년 끌어온 2차 포에니 전쟁도 로마의 승리로 마무리합니다. 자마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를 제압한 자’라는 의미인 ‘아프리카누스’로 불리게 됩니다.


이준석 대표가 처음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었을 때 잠깐 스키피오를 생각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젊은 피 되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저렴하고 가장 낯 뜨거운 정치문화를 개혁해 주길 기대했었나 봅니다. 얼마 전 윤리위에 회부된 이대표가 스키피오를 언급했더군요. 로마를 구한 영웅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원로원의 핍박을 받은 스키피오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걸까요? 아니면 동일시하는 걸까요? 36세에 거대 양당의 대표가 되는 파격을 만들었지만, 정치는 검증과 연륜이 필요하다는 명분만 노정객들에게 던져주고 청년정치의 희망을 뭉개버렸습니다. 개인적 역량까지는 모르겠지만 지도자의 인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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