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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Jan 19. 2023

정의 경중을 묻다!

역사 이야기

중국 최초의 세습왕조인 하나라 창업자 우왕은 전국을 아홉 주로 나누고 각 주에서 모은 청동으로 9개의 솥(구정, 九鼎)을 만듭니다. 구정은 중국 권력의 상징이 되어 하나라가 망하자 상나라로, 다시 상나라가 망하자 주나라로 전해집니다.     


거짓 봉화와 천금매소의 주인공인 주나라 12대 주유왕은 포사와 함께 정치를 어지럽히다 견융의 침입을 받아 살해당합니다. 기원전 770년, 아들 주평왕은 견융을 피해 중국 서쪽에 있던 도읍 호경(시안시 인근)을 버리고 옛날 주공단이 개척한 낙읍(뤄양시 인근)으로 천도합니다. 천도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라 하여 천도 이전과 구별합니다. 동주시대의 주나라는 실질적 패권을 잃고 약소국으로 전락합니다. 동주시대의 전반기인 춘추시대에는 제후국들이 주나라를 상징적인 종실로서 인정하던 시기입니다. 주나라만 왕호를 사용하고 제후국들은 주나라가 하사한 작위를 사용합니다. 양자강을 기반으로 하는 초나라도 주의 제후국이었지만, 주나라가 세력을 잃자 왕호를 사용합니다. 중원 제후국들은 초나라를 가리켜 ‘왕호를 참칭하는 남쪽 오랑캐’라며 멸시합니다.     


양장강을 기반으로 성장한 초나라는 초장왕 대에 이르러 중원국가들을 제압하고 춘추 세 번째 패권국가가 됩니다. 기원전 606년, 초장왕이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나라 국경에서 대군을 사열하며 무력을 과시합니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주였지만, 초는 오랜 전통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주는 왕손만을 파견해 초장왕을 만나게 합니다. 초장왕이 구정의 크기와 무게에 관해 묻습니다. 구정에 대한 관심은 주의 권위에 대한 관심이고, 초가 주를 대신하겠다는 시위이기도 합니다. 무늬만 천자인 주였지만 수백 년 전통에서 나오는 권위는 초가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정의 크기와 무게는 덕(德)에 있지 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손만이 대답하자 초장왕이 호기를 부리며 말합니다. “덕 같은 건 모르오. 다만 초나라의 부러진 창끝만 모아도 구정 따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소.” 왕손만이 다시 대답합니다.     


“하나라 걸왕이 무도하자 구정은 상나라로 옮겨졌고, 상나라 주왕이 무도하자 구정은 다시 주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천자가 덕이 있으면 그 정은 작아도 무거우며, 천자가 덕을 잃으면 그 정이 아무리 커도 오히려 가볍습니다. 모든 것이 천명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구정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왕께서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안해진 초장왕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갑니다.     


문정경중(問鼎輕重, 정의 경중을 묻다)의 고사입니다. 오늘날에는 상대를 떠보아 약점을 잡는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기원전 256년, 진(秦)나라가 무력으로 주나라를 병합하고 구정을 진나라로 옮기던 중 사수(泗水)에 빠뜨려 소실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훗날 진시황이 사수로 사람을 보내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신화로 존재하던 시대에 로마나 중국의 방대하고 정확한 기록문화를 대할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들이 한 세대를 살아가지만, 당대의 시대정신은 혼탁한 세태 속에서도 청아하게 빛나 어지러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지요. 다시 오랜 세월이 흘러 요즘의 중국을 봅니다. 구정이 전해지지 않아서일까요? 시대정신을 잃은 중국, 덕은 고사하고 땅만 넓은 소인배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경박한 졸부의 나라, 자제력 없는 저잣거리 건달 같은 나라가 돼 버렸습니다. 경제와 안보의 사이, 그리고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외교 문제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가 더 올곧은 역사를 써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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