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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Feb 14. 2023

자객이 필요치 않은 세상

역사 이야기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칼을 꽂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비수가 되는 사람을 자객이라 합니다. 대게는 지근거리에서 암살이 이루어지니 자객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극한 직업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자객이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입은 신의를 갚고자 자객이 된 사람들은 협객의 이름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마천도 자객의 의기를 높이 사 자객열전을 사기에 남깁니다.

     

자객열전에 기록된 다섯 명의 자객이 있습니다. 노나라 사람 조말, 오나라 사람 전저, 진(晉)나라 사람 예양, 위(魏)나라 사람 섭정 그리고 위(衛)나라 사람 형가입니다. 그중 조말은 자객이라 하기에는 성격이 다르니, 나머지 네 명이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자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 백미는 연나라의 비수가 돼 진(秦)왕 정(훗날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형가입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역사적 의미도 크고 가장 감동적인 서사가 있는 암살사건입니다. 이연걸이 주연한 장예모 감독의 ‘영웅’이 형가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전국시대 칠웅의 각축이 진나라의 통일로 귀결되려 하자, 연나라는 진왕을 죽여 역사의 흐름을 돌리려 합니다. 약한 연나라가 강한 진나라 왕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암살입니다. 연나라가 자객 형가를 진나라로 보냅니다. 그러나 암살은 실패로 끝나고 전국시대는 진나라에 의해 통일됩니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구나.

사내 한 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리.     


형가가 자객이 되어 떠날 때 역수에서 불렀다는 ‘역수가’의 앞부분입니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의 도입부에도 나오니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셨을 애잔한 시구입니다.     


이천이백 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 합법으로 위장된 자객들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전혀 협객스럽지 않은, 오랜 세월 지나도 더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이 시대의 자객들. 자객이 필요치 않은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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