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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Feb 17. 2023

삶을 정리하며 그는 후회했을까?

역사 이야기

로마노스 4세 디오게네스라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있습니다. 1030년, 전통적인 군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군 지휘관이었던 부친이 반란죄에 연루돼 자살하는 바람에 아버지 없이 성장합니다. 군인 관료가 된 로마노스는 튀르크 계통 유목민의 남침을 저지하는 공을 세웁니다. 1066년, 반란죄로 체포된 그는 원로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이듬해, 당시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0세가 죽고 아들 미하일이 제위를 잇습니다. 미하일은 나이가 어려 선왕의 황후이자 어머니인 에우도키아가 섭정합니다. 그러나 제국의 동쪽에서 셀주크 제국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국은 강한 황제를 요구합니다. 1068년, 원로원의 결의로 로마누스는 에우도키아와 결혼하고 공동황제에 오릅니다. 불과 2년 만에 처형을 기다리던 사형수에서 황제로 즉위하는 천운을 얻습니다.    

 

초기에는 군사적인 성과를 만들기도 했지만, 엄청난 전쟁 비용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미미했고 독선적인 성품으로 인해 국내 정치에서도 귀족들의 불만을 삽니다. 1071년, 황제는 제국의 동쪽을 위협하는 셀주크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원정을 떠납니다. 현재 튀르키예(구 터키)의 동쪽 끝에 있는 만지케르트에서 술탄 알프 아르슬란이 지휘하는 셀주크 군대와 마주합니다. 술탄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막대하게 든 전쟁 비용에 대한 부담과 급속히 성장하는 셀주크 제국을 길들이겠다는 의욕이 앞선 황제는 결전을 강행합니다.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는 대승을 거두고 황제를 포로로 잡습니다.     


술탄과 황제의 대화였다고 합니다.

술탄 : 나를 사로잡았다면 어찌하겠소.

황제 : 죽이거나 수도로 압송해 모욕을 주겠지요.

술탄 : 나는 더 심한 짓을 할 생각이오. 그대를 풀어주겠소.


술탄은 평화협정에 사인하게 하고 황제를 풀어줍니다. 패전 소식을 들은 콘스탄티노플은 원로원을 소집해 즉시 황제를 폐위시킵니다. 풀려난 황제는 폐위를 거부하고 내전을 벌이나 결국 패해 콘스탄티노플로 압송당합니다. 원로원은 전임 황제에게 실명의 형벌을 내립니다. 시력을 잃은 로마노스는 유폐되고 실명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하게 됩니다.     


만지케르트 전투는 비잔티움 제국이 몰락하는 시발점이 됩니다. 소아시아라고도 불리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이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에 넘어가고 1077년 예루살렘마저 점령당하며 2백 년 동안 벌어지는 십자군 전쟁의 원인도 제공합니다.     


시력을 잃고 수도원에 유폐된 황제는 죽음을 앞두고 42년의 삶을 되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사형수에서 황제로, 다시 두 눈을 제거당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으며 자신의 독선과 무능으로 제국에 끼친 폐해에 대해 반성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빼앗긴 권력에 대해 분노했을까요? 준비되지 않은 자가 권력을 탐하면 고통은 국민의 몫입니다. 독선과 아집 그리고 무능, 어느 것 하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지도자가 되어선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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