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일 Mar 20. 2023

수취인 불명

사람 이야기


이사 가고 온 지 몇 해를 넘기고도

때 되면 찾아오는 집 잃은 기억들이

1004호 우편함에 둥지 틀고 앉아

지난 세월을 품다.     

맹금의 눈빛으로 실지(失地)를 바라보는 시선엔

낯익은 기억과 낯선 얼굴이 공존하고

이미 아득해진 추억 속의 행복은

유실된 퍼즐처럼 맞춰지지 않는다.     

5년을 살다 떠난 ‘그들’과

다시 오 년을 살고 있는 ‘나’ 사이엔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에 살고 있을 뿐

얼굴마저 희미한 매매계약서로만 남아있다.     

부동산 거품의 정점에서 ‘그들’은

은행의 선심을 담보로 통 큰 구매를 했고

부동산이 폭락하자 선심은 매정하게 회수되었다.

오 년을 버티고 버티다 긴 한숨을 손절한 ‘그들’의

평생 모은 미래는 모질게 폐기되었고

잔고 제로의 현실은

‘그들’이 꿈꾸던 안락을 안락사 시켰다.     

한이 된 도시를 떠나

소문으로만 떠돌던 ‘그들’은

문서로 배송된 이동통신사의 독촉과

자동차 회사의 판촉과

제이금융권의 넉넉한 인심으로 돌아와

매일 나고 들던 현관 우편함에 꽂혔다.     

전세를 전전하다 그들의 손절을 구매한 ‘나’는

우편함에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불행이 내 탓일까 반문했고

반송함으로 둥지를 옮기는 손길이

모질게 느껴질 때가 있다.     


늦은 밤,

기분 좋은 취기와 함께 귀가할 때면

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우편함을 내어주며 화해의 미소를 건넨다.

작가의 이전글 과(過)하면 벌어지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