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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Apr 24. 2023

산행을 노동으로 바꾼 자!

사람 이야기

부모님 뵐 겸, 직장 사직하고 낙향한 친구와 술도 한잔할 겸 고향에 갑니다.

김밥 두 줄과 물 세 통 배낭에 넣고 새벽에 길을 나서 한계령으로 향합니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길 내어 주지 않던,

서북능선으로 대청봉에 오르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입니다.

계획대로라면 한계령휴게소에 주차해야 했지만 폐쇄되어 있네요.

시작부터 불길합니다.

주차를 위해 오색으로 향합니다.

한계령까지는 택시를 타야 할 것 같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비용을 지불합니다.

‘소형차 5천 원, 대청봉 만 원’이라는 요금표가 요상합니다.

5천 원을 건네니 만 원을 달랍니다.

“뭔 차이인가요?”

“6시간 기준입니다. 대청봉 등산객은 6시간을 넘기니 두 배를 받습니다.”

“어! 6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습니다.

“1시 반까지 내려오면 5천 원 돌려드립니다.”

어차피 서북능선으로는 다녀오기에 불가능한 시간이라 웃으며 돌아서려는데,

관리인의 마지막 말이 호승심을 자극합니다.

“20년 넘도록 환불해 간 사람 딱 두 명뿐입니다.”

“정말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도전!, 서북능선 아웃!”


7시 30분, 주차장을 출발해 1km 떨어진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벌써 숨이 가쁩니다.

기필코 세 번째 환불자가 되겠다는 결기를 다지며 45분에 지원센터를 출발합니다.

이미 산행이 아니라 경주가 되었습니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옛날에 비해 등반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정말 체력 좋은 분들은 4시간에도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아무튼 풍경 즐길 겨를 없이 대청봉에 도착하니 막 10시가 지나고 있습니다.

멀리 바다까지 보이는 드문 날씨입니다.

지리산과 차별되는 풍경이 심장을 뛰게 합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다 서북능선을 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주차관리인의 비웃음을 떠올리며 고민을 거둡니다.

10시 30분, 대청봉을 출발해 오색으로 향합니다.

하산이 등산보다 힘든 드문 코스입니다.

지원센터에 도착하니 12시 25분이네요.


“관리인 죽었쓰!”

마트에 들려 커피 한잔하며 쉬다가 주차장에 도착하니 1시입니다. 관리인과 마주합니다.

“사장님, 환불요!”

잠시 멍한 표정이 곧 어이없음으로 바뀝니다.

“정말 대청봉 갔다 왔나요?”

“환불조건은 대청봉이 아니라 6시간 이내잖아요.”

“그렇긴 한데…, 대청봉에 가자마자 바로 내려왔지요?”

“아닌데요, 30분 쉬었는데요!”

“산 정말 잘 타시네요.”

득의양양하게 5천 원을 받아 돌아서는 순간 찾아온 ‘현타’.


무가치한 것에 집착해 산행을 노동으로 바꾼자,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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