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일 May 04. 2023

청계공원묘지

사람 이야기

인덕원과 판교를 가르는 청계산엔

순풍 부는 날이면 나룻배로 오르기 좋을

물길 닮은 옛 도로가 있다.

청계를 넘나드는 두 고속도로와

시원하게 뚫린 광폭도로에 갇혀

기능이야 광폭하게 익사 당했지만

인적도 차적도 듬성해진 옛 길을

돛 걸고 노 저어 오르면

수평선만큼 깊고 푸른 침묵과 만난다.


잿빛 파도 헤치며 청계 오르는 속도, 3노트

제어된 속도로만 닿을 수 있는 산정 한쪽에

삶도 죽음도 무상해질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가 있다.

침묵마저 숨죽인 섬을 닮은 공간엔

비로소 공평해진 세상이 파도에 일렁이고

무리 이뤄 유영하는 죽은 자들의 집엔

해풍에 무너진 상처가 딱지처럼 얹혀 있다.


폐묘(廢墓) 위로 내려앉는 햇살이 너울에 흩어지고

해거름 몰아낸 어둠이 밀물에 잠기면

묘지 한가운데 닻 내리고 앉아

살 짓무르고 눈알 하나쯤 잃은 놈 몇 잡아

형태 겨우 남은 봉분 사이 모닥불 피운다.

재 너머 운중저수지 지나 물길 끝나는 곳

화려한 도시의 파닥거리는 어종에선 어림없을

끈적거리는 세월이 만든 묵힌 맛이 있어

썰물에 드러난 무덤가에 모여 앉아

죽은자들의 축제를 시작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곳

청계산엔 폐어들이 모여 사는 어장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강직한 신념이 만든 정치의 정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