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한 제약회사가 벼룩의 간에서 추출한 신약을 개발했다. 열흘 간격으로 세 알을 복용하면 15년의 세월을 되돌릴 수 있는 제한된 성능의 불로초였다. 이천이백여 년 전, 중국 역사의 정점에 있었던 한 고객의 갈망과 인류의 염원을 담아낸 위대한 성과로 평가되었고, 역사를 신약개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이 있을 만큼, 신약은 복용 여부를 떠나 화제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신의 영역에 대한 불경한 도전이라는 종교계의 강력한 경고가 있었지만, 종교지도자들의 집단복용 사실이 폭로되면서, 종교적 논리로도 신약복용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15년이라는 육체와 정신의 괴리가 만들어 내는 심리적 부작용은 시간을 건너 만들어 낼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한 알에 일억원 하는 약값이었다. 독점이기도 했지만, 벼룩의 인공부화 실패, 추출과정의 복잡성, 그로 인한 한정된 생산량은 높은 약값의 원인이 되었다. 3억이 ‘껌값’인 소수 부유층엔 문제될 게 없었지만, 3억은 고사하고 3천도 꿈인 대다수 서민도 문제될 게 없었지만, 15년을 놓고 기회비용을 따져야 하는 중상위 계층이 문제였고, 신약복용을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은 잠재적 범죄자가 문제였고, 무상보급 운운하는 일부 정치인의 포퓰리즘이 문제였다. 재산 대부분을 투자해야 투약이 가능한 현실은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무능을 원망했고, 수많은 부부가 홀로 젊어진 배우자를 비난하며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약값 마련을 위한 범죄도 끊이지 않았다. 신약은 계층 간의 차이를 현실 속에서 인식하게 했고, 가족 간의 사랑을 물리적으로 측량하는 계측기가 되었다. 신약으로 인한 갈등이 극화되자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때맞춰 신약이 심장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고, 연구에 사용된 통계가 근거 없다는 제약사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신약 승인 철회와 공장 폐쇄 결정이 이어졌다. 국민들은 아쉬웠지만 정부의 결정을 수용했다. 신약이 일으킨 혼란이 기억 속에서 잊혀 갈 때쯤, 몰라보게 젊어진 누군가를 볼 때마다 의혹이 들긴 했지만, 혼란을 돌이키고 싶지 않은 대다수 국민은 애써 묵인했고,
담담하게 늙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