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일 Jul 20. 2023

싸움의 품격

역사 이야기

1071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로마노스 4세 디오게네스는 지금의 튀르키예 동쪽 끝에 있는 만지케르트에서 술탄 알프 아르슬란이 지휘하는 셀주크 제국 군대와 마주합니다.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패한 비잔티움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소아시아라고도 불리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이 이슬람 세력에 넘어가고 1077년에는 예루살렘마저 점령당하며 2백 년 동안 벌어지는 십자군 전쟁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원정에 나선 1차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건국합니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사는 수만 명의 이슬람교도와 유대교인을 학살합니다. 명분은 ‘신의 심판’입니다.     

한 사내가 있습니다.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창시자 모하메드에 이어 인기 순위 2위인 남자, 기독교 세계로부터도 존경받는 관용과 자비의 술탄, 살라딘입니다. 쿠르드족 용병의 아들로 태어난 살라딘은 이집트와 아라비아반도 일부를 영역으로 하는 아이유브 왕조를 창건합니다. 살라딘은 미천한 출신을 딛고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이슬람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 정복을 꿈꿉니다.     


1187년, 예루살렘의 명운을 놓고 예루살렘 왕국과 아이유브 왕조가 하틴에서 마주합니다. 하틴 전투는 살라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납니다.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항복한 예루살렘은 이슬람 세계로 넘어갑니다. 살라딘의 예루살렘 정복 과정을 기독교적 가치에만 치우치지 않고 영화화한 것이 ‘kingdom of haven’입니다. 올랜드 블룸이 주연한 발리안은 영화와는 달리 예루살렘 출신입니다. 하틴 전투에서 살아남은 발리안은 친분이 있던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 가족을 데리고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살라딘이 허락하고 발리안은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백성들이 발리안에게 예루살렘을 지켜달라고 요청합니다. 청을 거절할 수 없게 된 발리안이 살라딘에게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가족은 예루살렘을 탈출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살라딘이 요청을 받아들이고 호위병까지 보내 가족들의 탈출을 돕습니다. 항복한 예루살렘에 입성한 살라딘은 100년 전의 십자군과 달리 이교도를 살육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계에 넘어가자 성지회복을 위한 제3차 십자군이 결성됩니다. 그 중심에 정치력은 부족해도 싸움만큼은 기원전 3세기 말 중국을 휘졌던 항우와 비견될 영국왕 리처드 1세가 있습니다. 사자왕이라고 불린 리처드는 1187년부터 3년 동안의 전쟁에서 사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줍니다. 살라딘과의 싸움에서 매번 승리하지만, 국내 문제로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의 지배권은 살라딘에게, 대신 기독교인의 성지순례는 자유롭게 허락한다는 협정을 맺고 귀국합니다. 이전에도 성지순례가 허용되었으니 리처드에게 철군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협정입니다.     


살라딘과 사자왕 리처드, 둘 사이엔 피비린내 풍기는 전장에서 흔하지 않은 뒷얘기가 있습니다. 한 전투에서 맹위를 떨치던 리처드의 말이 죽자 살라딘은 저런 용사가 말없이 싸우게 할 수는 없다며 말 두 마리를 보냅니다. 그 말을 탄 리처드가 다시 살라딘의 군대를 헤집고 다닙니다. 리처드가 열병을 앓자 살라딘은 주치의를 보내 치료하게 합니다. 그런 살라딘을 리차드도 존중했다고 합니다. 리차드가 귀국하며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고 하자, 살라딘은 “만약 예루살렘을 빼앗긴다면 당신에게 빼앗기는 것이 낫다”고 답합니다.

    

싸움에도 격이 있습니다. 머리채 잡고 쥐어뜯으며 싸우는 아귀다툼과는 다른 격, 싸움은 피할 수 없더라도 격은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박봉 쪼개 내는 세금이 안 아깝지 않겠습니까?


작가의 이전글 놓친 고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