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기원전 753년 창건된 로마왕국의 건국신화는 기원전 1200년을 전후로 추정하는 트로이 전쟁에서 시작합니다. 왕정이 공화정(기원전 509년~기원전 27년)으로, 공화정이 다시 제정으로 바뀌며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이 망하는 1453년까지 2,200여 년간 존속합니다. 1453년은 인류사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 담론이 존재하지만,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는 473년부터 동로마제국이 몰락하는 1453년까지를 중세로 구분합니다.
지금은 튀르키예의 영토인 이스탄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폴리스입니다.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수도였고 마르마라해에서 흑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관문에 위치하며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이자 두 대륙을 잇는 가교이기도 합니다.
1444년, 오스만제국의 7대 술탄인 메흐메트 2세는 12살에 아버지 무라트 2세로부터 양위 받아 술탄이 됩니다. 1453년, 21살의 메흐메트는 330년 이래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략에 나섭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에 둘러싸인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난공불락의 도시입니다. 이전 19차례의 공방전에서 두 차례만 주인이 바뀐 역사가 있습니다. 그 한차례가 아이러니하게도 4차 십자군에 의해서입니다. 1204년, 12차 공방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4차 십자군이 라틴제국을 세웁니다. 1261년, 15차 공방전에서 동로마제국의 잔존국인 니케아제국의 황제 미하일8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고 동로마제국을 재건합니다.
그로부터 2세기가 지나 오스만제국에 의해 20차 공방전이 시작됩니다. 20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1100년 고도를 지키는 동로마제국의 군사가 용병 2천 명을 포함해 7천여 명이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오스만제국의 군사는 8만에서 20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동로마제국이 기대하는 건 기독교 세계인 서방의 지원이었지만, 자국 사정으로 동로마제국을 지원할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메흐메트 2세의 항복 권유에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당신에게 도시를 넘겨줄 권리는 나뿐 아니라 이곳에 사는 누구에게도 없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의지에 따라 죽기로 했고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이오!"
5월 29일 오스만제국이 총공세에 나서고 마침내 성문이 열립니다. 황제는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밀려오는 오스만군을 향해 돌진합니다. 이로부터 180여 년 전인 1279년,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남송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애산을 공격합니다. 애산에는 남송의 의병 20만이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300여 년 이어온 송나라와 최후를 함께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660년, 가족을 죽이고 백제의 마지막을 함께한 계백과 5천 결사대도 있습니다.
전쟁이란 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니 언제나 비장합니다. 우리의 정치는 무엇을 걸고 싸우길래 이렇듯 우스꽝스러운 걸까요? 비장함 없이 적당히 다투고 적당히 붙어먹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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