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처음입니다만

생각 없음의 날

by 충청도 여장사람

머리는 비었는데, 피곤은 가득한 날


뭔가를 하기도 전에 하루가 나를 덮쳐버렸다.

어젯밤에는 분명, 오늘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뭐라도 해보자 했는데

그 ‘뭐라도’는 내 머릿속 저기 멀리 어딘가로 가버렸다.


머릿속이 백지인 날.

아이들이랑 약속했던 것도 기억이 안 나고,

냉장고 앞에 서서 문을 왜 열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안 난다기보다,

생각하기를 멈춘 것 같다.

보이진 않아도 나의 머릿속은 매일매일

이것저것 꼬리의 꼬리를 물고 생각을 하고, 없애고,

생각을 하고, 또 없애고.


연쇄 생각 살인마인가.

내가 지금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인스턴트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고 휘휘 저으면서

섞여 녹아들어 가는 커피 알갱이처럼,

나의 ‘생각 없는 하루’도 이렇게 녹아서

하루가 사라지겠지.


… 뭐라는지도 모르겠네, 진짜.


그냥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생각 없음의 날’로 하련다.

아이들 저녁식사 메뉴도 생각 없음,

아이들 간식거리도 생각 없음.


오늘의 ‘생각 없음의 날’이

내일 크게 파도로 돌아오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때 가서 또 생각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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