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만큼 다르게 산다
회사 건물을 나와 탄천 쪽으로 몇 걸음.
다리 밑 물결이 낮게 흔들리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오늘 무엇을 얼마나 보았을까. 화면을 보며 숫자를 읽었고, 회의실에서 표정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정말로’ 본 것은 얼마나 될까.
물살의 결을 천천히 좇다 보면 마음이 약간 고개를 든다.
보는 일이 곧 사는 일이라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창틀을 갖고 산다.
같은 풍경도 누구의 창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기록된다.
그래서 ‘보는 법’을 새로 배우는 일은, 삶의 문장을 다시 쓰는 일과 닮아 있다.
멀리 있는 특별함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아주 가까운 것을 오래 바라보려 한다.
책상 모서리의 닳은 결, “괜찮아요” 뒤에 조금 어색하게 남는 동료의 미소, 저녁 골프연습장에서 공이 떠오르기 직전 잠깐의 정적. 가까운 것을 오래 보면 사소함이 의미로 바뀌고, 의미가 발견되면 태도가 달라진다.
정확히 본다는 건 마음을 잠시 식히는 일과 가깝다.
문제를 볼 때는 온도를 낮추고, 사람을 볼 때는 온도를 올린다.
‘사실’을 먼저 보고, ‘감정’을 나중에 건네면 관계의 상처가 줄어든다.
보는 눈과 대하는 마음의 온도를 분리하는 연습—그게 성숙을 조금씩 만든다.
눈은 빠르고 변화는 느리다.
빠른 눈이 느린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면, 일부러 속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10초 정지.
숨이 가팔라질 때, 화면을 덮고 먼 곳을 가만히 바라보는 20초만 있어도 눈과 마음에 바람이 통한다.
첫인상에 바로 의미를 덧칠하지 말고,
서로 다른 사실을 두 개만 더 모은 뒤 조심스레 해석해 본다.
말할 때는 상대의 눈동자에서 ‘반응’이 아닌 ‘의도’를 읽어보려 한다.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시선을 바꾸고, 시선은 결국 하루의 결을 바꾼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창틀을 손본다.
편견이라는 못을 몇 개 뽑고, 서두름이라는 먼지를 한 번 털어낸다.
그러면 같은 풍경이 다른 빛을 띤다.
물결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내가 달라졌다는 걸 제일 먼저 눈이 안다.
조금 더 정확히 보고, 조금 더 따뜻하게 해석하고, 조금 더 느리게 반응하는 것.
그 세 가지가 쌓이면, 삶의 초점이 맞춰진다. 보는 법을 바꾸는 순간, 사는 법도 조용히 달라진다.
“세상을 보는 눈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더 따뜻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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