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경계와 리듬

멈춤과 이어짐 사이에 삶의 선을 긋다

by 오석표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의 줄에 선다.
먼저 온 사람의 뒤에 서는 일.
대단한 예의는 아니지만
하루의 첫 리듬을 맞추는 동작이다.


빨래를 널던 날들이 생각난다.
빨랫줄에 집게를 하나씩 물려 가며
옷 사이 간격을 조금씩 띄워 두던 손.
사이의 여백이 바람을 통과시킨다.
그 여백 덕분에 젖은 천이 먼저 마른다.


책상 위 업무노트를 꺼내들어 직선을 긋는다.
오늘의 할 일을 세 줄로만 적는다.
줄이 생기면 마음이 모이고
과한 욕심이 줄어든다.
줄은 욕심을 정리하는 도구다.


관계에도 줄이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보이지 않는 선이 필요하다.
조언을 서두르지 않고
상대의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줄.
넘지 않으려 애쓸수록
안전하게 더 가까워진다.


운동장 트랙을 돌 때
하얀 선을 밟지 않으려 발끝을 조정한다.
규칙은 속도를 느리게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더 멀리 가게 만든다.
지켜야 할 줄을 지킬 때 방향이 생긴다.


저녁 골프연습장에서 스윙을 멈추고
클럽 페이스의 홈 사이에 낀 공의 흔적을 털어낸다.
얇은 줄 같은 금속 홈이
공의 방향을 바꾼다.
작은 선이 큰 결과를 만든다는 걸
몸이 먼저 배운다.


밤, 창문 가에 커튼 끈을 묶는다.
하루의 소음을 여기에 매달아 둔다.
끈이 느슨하면 바람이 휩쓸고
너무 팽팽하면 금방 끊어진다.
적당히 당긴 줄이 하루를 단단히 묶는다.


우리 몸에도 줄이 있다.
호흡의 길, 맥의 흐름, 척추의 라인.
한 번 길게 내쉬면
가슴 안, 보이지 않던 선들이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호흡의 한 줄이 마음의 문단을 바꾼다.


줄은 나누면서 잇는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만들고
이어야 할 마음을 한 줄로 묶는다.
오늘 나는 내 안의 줄을 조금 정리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지금 말해야 할 문장과
내일로 미뤄야 할 문장을 나눈다.


줄을 잘 긋는 순간, 하루가 흐른다.
멈춤과 이어짐 사이에서
내 삶의 리듬이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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