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불 앞에서 배운 위로의 맛
나는 8남매 중 막내였다.
윗누나와 형들은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고,
내가 어울린 형제는 고향에 남은 큰형과 바로 위 누나 둘이 대부분이었다.
명절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누나와 형들은 조금 세련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일곱 살부터 아버지에게 서울 학교에 보내 달라며
밭까지 쫓아가 울고 떼썼다.
그날도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가 칭얼거렸고,
아버지는 밭에서 콩대를 베어 모아 불을 지피셨다.
메캐한 연기가 걷히고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자
아버지는 구운 콩깍지를 툭툭 털어
잘 익은 강낭콩을 내 손에 쥐여 주셨다.
그게 아버지가 찾은 달래기의 언어였다.
콩은 내게, 희망을 달래는 추억이 되었다.
그해 아버지는 큰 결심을 하셨다.
서울은 아니지만 더 큰 도시, 대전으로 이사.
삼륜 트럭에 실려 도시로 들어가던 날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선명하다.
서울살이는 대학에 가서야 이뤄졌고,
그렇게 올라온 서울에서의 시간이 어느새 마흔 해에 가깝다.
아침, 밥솥에서 김이 오른다.
나는 오늘도 쌀을 씻으며 콩을 조금 섞는다.
물의 탁함이 맑아질 때까지 손을 천천히 움직인다.
밥이 준비가 되는 동안 간단한 반찬을 준비하고
숟가락 자리를 반듯하게 맞춘다.
뚜껑을 여는 순간, 아이 때 그 냄새가 돌아온다.
작은 알이 하루를 버틴다.
보이지 않아도 채워 주는 것들이 있다.
급한 날에도 아침 두 숟가락만은 서두르지 않는다.
알갱이가 혀 위에서 반쯤 부서질 때
마음의 모서리도 함께 둥글어진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 한 번 숨,
회의에서 말하기 전 두 번 생각—
콩 한 알만큼의 여유가 오후의 나를 오래 붙든다.
저녁에 빈 그릇을 씻으며 생각한다.
아버지가 불 앞에서 건네던 그 따뜻한 한 줌.
그 마음을 오늘의 밥에 조금씩 섞어 넣는다.
작다고 가볍지 않다.
보이지 않아도 줄지 않는다.
한 알의 작은 힘으로, 오늘도 나는 버틴다.
#콩 #아버지 #추억 #위로 #아침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