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한 그릇이 겨울을 건너게 하는 온기
겨울 아침, 시장 앞을 지날 때
박스 위로 올려진 무의 하얀 단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 장터에서 마신 무국이 떠오른다.
손시린 날, 하얀 김이 눈앞을 가리던 시간.
한 숟가락이 목을 지나가며
서두르던 마음이 조금 늦춰졌다.
국물의 온도는 마음의 속도를 낮춘다.
지금도 식탁에 맑은 국이 오르면
먼저 김부터 가만히 바라본다.
투명한 국물 아래 단정한 모서리를 보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자연히 정리된다.
속이 맑아지면 말도 맑아진다.
하루의 계획을 적을 때도
조금 덜어내고 조금 기다린다.
불필요한 한 줄을 지우면
내 마음의 단맛이 스스로 드러난다.
덜어낼수록 깊어진다.
저녁 길에 다시 마트를 지나며 생각한다.
무처럼 단단하되, 물속에서 부드러워지는 법.
딱 그만큼만 힘을 빼고, 그만큼만 맛을 남기는 법.
맑게 보고, 천천히 건네자.
하루가 투명해지고, 겨울이 조금 짧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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