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자리의 힘

자리가 바뀌면 맛도 마음도 달라진다.

by 오석표

겨울 저녁, 귤을 깐다.
손끝에 스민 향이 방 안을 금방 밝힌다.
한 조각을 베어 물며 문득 떠오른다.
회수 남쪽에선 귤, 북쪽에선 탱자.
같은 나무라도 자리와 바람이 바꾸는 것들이 있다.


회사 자리 배치를 바꾼 날이 있었다.
창가에서 안쪽으로, 사람들 동선이 많은 곳으로.
커피는 같은 브랜드였지만 맛이 달랐다.
소리가 더 가까이 와서였을까,
나는 말수가 줄고, 메모가 늘었다.
환경은 습관을, 습관은 표정을 바꾼다.


집도 그렇다.
책상을 벽에서 창가로 옮겼을 뿐인데
아침 첫 문장이 조금 밝아졌다.
빛이 들어오면 의자에도, 마음에도
앉는 방식이 달라진다.


‘귤이 탱자 되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누구 탓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나는 어떤 자리에서 어떤 맛을 내고 있는가?
말투의 염도는 적당한지,
속도를 낮출 여백은 있는지,
빛을 들이는 창은 열어 두었는지.


물론,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환경은 맛을 바꾸고, 태도는 맛을 지킨다.
바람이 세면 몸을 낮추고,
흙이 거칠면 물을 더 준다.
자리의 변수 앞에서 내가 쥘 수 있는 상수—
하루의 의식, 말의 순서, 작은 정돈.


오늘 귤껍질을 접시에 쌓아두며 다짐한다.
자리 때문에 내가 변한다면
변한 나로 자리도 조금 바꿔 보자.
의자를 반 걸음 당기고,
창을 반쯤만 더 열고,
첫 문장을 한 줄 덜어낸다.


바뀌어야 할 것은 바꾸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키자.
자리를 고치는 것만큼, 마음을 고쳐 묶자.
그렇게 하면, 남쪽의 귤이든 북쪽의 탱자든
나는 오늘의 맛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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