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겨울 한 줌

손끝의 햇살, 가족의 시간, 농부에게 보내는 감사

by 오석표

거실 바닥이 따뜻한 밤,
식탁 위 상자에서 귤을 하나 집는다.
껍질을 살짝 당기면
작은 햇살이 튀듯 향이 먼저 번진다.


조각을 나누어 접시에 올리고
“이건 큰 거, 자기 드세요” 하고 밀어 둔다.
귤은 겨울의 햇살을 손으로 껍질 벗겨 먹는 일.
새콤함이 혀를 깨우고
속이 시원해지면 말도 가벼워진다.


손끝에 하얀 결이 조금 남아도 괜찮다.
껍질이 접시에 쌓여 작은 산이 될 때까지
각자의 이야기가 조각처럼 오간다.
오늘 있었던 일, 웃겼던 순간,
그리고 그냥 “괜찮았어?”라는 안부.


문득 생각한다.
이 한 알이 오기까지의 한 해.
봄의 작은 꽃, 여름의 바람과 비,
가을의 빛을 모으고
사람의 손이 수확해 상자에 담아 보냈다.
돌담 너머 바람을 막아 주던 그물,
가지치기와 선별, 굳은살 오른 손바닥까지.


한 알의 새콤함 뒤에는 한 해의 수고가 있다.
감사는 멀리 있지 않다. 껍질 하나에 묻어 있다.


우리는 오늘의 햇살을 나눠 먹는다.
달고 시원한 조각이 목을 지나가면
마음의 모서리도 조금 둥글어진다.
마지막 조각을 반으로 갈라
옆 사람 접시에 살짝 올려 둔다.


빈 껍질을 손바닥에 모아
향을 한 번 더 깊게 들이마신다.
내일의 나에게도 이 냄새가 남아
수고한 사람들을 기억나게 하길.


귤 한 알로 우리는 겨울을 밝힌다.
가족의 온기와 제주의 햇살이
오늘의 식탁 위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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