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것은 흐릿해졌지만, 인생은 더 선명해졌다.”
처음 노안이 왔을 때,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가까운 글씨가 흐릿해졌고,
늘 보이던 핸드폰 문자도
이제는 한 팔쯤은 멀리 떨어뜨려야 했다.
‘아, 나도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서글픈 현실이
눈앞을 흐리게 했다.
하지만 그 낯선 불편함이
한동안 계속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것도 신이 주는 메시지는 아닐까?”
가까운 것이 잘 안 보인다는 건,
어쩌면
너무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일지 모른다.
정작 멀리 있는 풍경은
여전히 선명하게 잘 보이니까.
그렇다.
노안은 육체의 퇴보가 아니라,
시야의 전환을 요구하는 전환점이었다.
더 이상 눈앞의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조금은 멀리서,
조금은 넓게
내 삶의 흐름과 방향을 바라보라는 신호.
젊을 땐
모든 게 가까웠다.
사람도, 감정도, 상처도.
그래서 쉽게 웃고, 쉽게 무너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멀리 보는 눈에는
다른 종류의 지혜가 깃든다는 걸.
눈은 흐려졌지만,
가슴은 오히려 더 멀리 뛴다.
나는 지금
육체보다 마음이 먼저 앞으로 간다.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던 나는
이제 조금씩
멀리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게 바로
나이 듦의 기쁨이자,
인생이 보내는 작지만 분명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