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잊기 위한 게 아니라, 때로는 기억을 꺼내기 위함이다.
술은 마시는 게 아니라
흘리는 것이다.
마음속에 고여 있던 외로움이든,
말하지 못한 미안함이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든—
술을 한 잔 들면
그 모든 것들이 잔을 타고 천천히 흘러나온다.
술은 사람 사이의 거리도 녹인다.
평소엔 서먹했던 사이도,
무뚝뚝하던 아버지도,
조심스럽던 고백도—
술 앞에서는 살짝 문을 연다.
그렇다고 해서
술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때로는 그 술이,
숨겨놨던 상처를 꺼내게 하고,
때로는 그 술이,
이미 엎질러진 말을 후회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술은 ‘마신다’기보다
‘견딘다’고 해야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참, 술이 고마울 때가 있다.
말하지 못한 진심을
작은 잔 하나에 담아,
조금은 촌스럽고,
조금은 눈물겹게
사람을 사람에게 데려다 놓을 때.
어느 날엔, 혼자 마시는 술이
나를 가장 잘 위로해주기도 하고,
어느 날엔, 함께 마시는 술이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기도 한다.
술은 결국 ‘사람’이다.
마시는 이유도 사람이고,
기억에 남는 것도 사람이고,
그리고 그리워지는 것도,
언제나 사람이다.